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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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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질서

/ 일중독 /

신대현 목사

1. 우리는 왜 쫓기며 살아야 되나? 일이 우리의 우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일에 파묻혀 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일에 쫓기며 살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보자. 혹 어렸을 때의 경험과 연결되지는 않는가?

2. 누구도 자기가 일 중독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 중독에는 증상이 나타난다. 아래의 증상에서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무엇인가?------- a. 주중에 일하는 시간을 과도하게 길게 가지려 한다; b. 성취한 것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한다; c. '아니(No)'라는 말을 못한다; d. 쉬거나 여가를 가지지 못한다.

3. 전도서 2장 17-23절을 묵상해 보자. 그런 후 24-25절을 묵상해 보자. 우리는 어떠할 때에 일에서 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나?

4. 일에 중독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결과가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5. 일에 쫓기는 사람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의 열심은 겉보기에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어떤 차이이겠는가?

6. 일 중독을 치료한다고 할 때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는가? 특별히 사회적인 요소를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하면 일에서 놓일 수 있나.

7. 휴가와 안식에는 차이가 있다. 안식은 휴가와 어떻게 다른가?(눅 21:37, 3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안식은 무엇인가?(마 11:28). 토론 가이드


1.

왜 쫓기며 살아야 될까? 그 원인은 인간 성품의 내면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제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에 중독된 사람은 일을 느긋이 하려고 할 때 "금단(禁斷) 증상(Withdrawal Symptom)"으로 고통한다. 그래서 집으로 일을 가져오든지 주말을 일로 꽉 채워버림으로써 그 증상을 해결하려고 한다. 오히려 휴가나 여가는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시간이다.

일 중독은 신학적이고 영적으로 볼 때 이미 일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다. 우상 숭배는 잘못된 헌신의 결과이다. 그것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에 궁극적인 관심을 두는 것이다.

또한 일 중독 사람에게 구원은 행위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다. 우리가 생산적이건 그렇지 않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지 못한다. 그에게 용납이란 개념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다.

어렸을 때의 체험이 그 원인인 경우가 많다. 부모가 아이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기준 삼기보다 그 아이의 성취가 기준이 된 경우이다. 부모는 아이와 늘 그런 기준에서 대화를 나눠왔고, 그래서 아이는 행함과 존재를 구별하지 못한다. 인격과 성취를 분별하지 못한다.

조건 없는 사랑은 자율적인 자기 평가, 객관성 그리고 마땅히 자랑스러워 해야 할 문제에 있어서 자기 긍정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반면 조건적인 사랑은 인정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적이 되어야 한다고 아이에게 가르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에 과도하게 몰입하며 그것을 불안이나 감정적인 고통을 피하는 방법으로 취한다. 결과는 어떠한가. 일은 아이의 존재의 모든 면을 규정하면서 다른 사람 중심에서 자기 중심적인 활동으로 움직여 간다. 무슨 뜻인가. 그들은 점차 사회를 위한 활동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뭔가를 증명해 보이려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안에 일 중독의 패턴이 깊이 베어들면 아버지의 죄가 삼사 대까지 가듯이 아이의 자녀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출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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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 중독은 정규 고용직(9시에서 6시 근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으며 자영업, 소규모 비즈니스, 전문직 또는 가사일 같은 것과 연관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의 공통점은 일하는 자가 일의 양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일 중독의 증상은 무엇인가?

1. 주중에 일하는 시간을 과도하게 길게 가지려 한다.
2. 성취한 것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한다.
3. '아니(No)'라는 말을 못한다.
4. 쉬거나 여가를 가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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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 중독이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깊이 반영하는 말이 전도서 2장 17-23절에 나와 있다.

전도서 2:17-23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그 사람이 지혜자일찌, 우매자일찌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서 내 지혜를 나타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마음으로 실망케 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가. 그는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에 즐거움을 가진다

전도서 2:24-25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믿음의 사람이 세상 사람과 다른 차이는 사람의 수고의 열매가 사람의 손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있다. 동일하게 수고를 하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느냐 아니면 끊임없이 마음을 졸이면서 자기 수고의 열매를 취하려고 안간힘을 쓰느냐에 따라 일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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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 중독에 빠진 사람의 심각한 결과는 무엇인가:

가정 생활이 파괴된다. 영적 성장에 태만해진다. 일에 대한 수익체감(收益遞減=diminishing returns) 현상이 일어난다(일은 더 많이 하는 데 비해 결과는 오히려 같거나 줄어드는 현상). 육체적으로 긴장이 찾아온다. 삶을 바라보는 균형을 상실한다. 당하는 고통에 대해 남을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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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울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유대의 율법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용납과 의를 얻어내고자 했었다. 그랬기에 기독교를 제거하는 일은 그의 사명이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어떻게 변했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진 은혜를 체험하면서 그는 그 은혜 안에서 힘을 얻었고 자유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의를 성취하려는 인격마비 증세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의 열정은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골로새서 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일에 쫓기는 사람과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겉보기에 유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에 쫓기는 사람은 자기와 주위 사람들을 파괴하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반면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고 자유케 해 주는 '풀려난 자'이다. 무엇으로 채워졌느냐에 따라 어떻게 표현되어지느냐가 달라진다. 이런 면에서 바울이 술취함과 성령의 충만을 대조한 것은 의도적이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며, 현재 시제이기 때문에 계속되는 체험이며, 복수형이기 때문에 믿음의 공동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황홀경에 빠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속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하는 관계와 기쁨을 위한 것이다(엡 5:21).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기쁨을 취하지 못하는 자는 대체적인 것을 찾는다. 처음에는 충동적으로 그것을 찾아 나서지만 이내 강박관념이 된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 하지만 우리 손은 너무 꽉 차서 그것을 받지 못한다. 우리 손은 쫓기는 삶의 결과들로 차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의 힘이 우리의 약함에서 나타날 수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또한 종교적인 훈련도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함으로 나타나는 열매이다(갈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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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앞서 가길 원할 때"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일 중독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부인되면서 심각할 정도가 되기까지 허용될 수 있다.

온통 관심은 자기에게 쏠려 있고, 그래서 자기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필요가 생길 때에는 공격적인 삶의 태도가 표출되며, 분노의 대상을 선정하여 마음에 두기가 일쑤이고, 사랑을 받지 못할까 혹은 통제력을 상실할까 두려워한다.

자기에게 몰입되어 있는 사람을 고치려 하는 일은 그 사람에게서 일을 빼앗거나 그 사람을 심하게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이다.

그러나 사람이 일에서 풀려나는 과정은 가장 가까운 자들 예를 들어서 직장 상사나 돈 벌어올 것을 요구하는 가족들이 그 사람의 변화를 원치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복잡한 양상을 띌 수 있다. 게다가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면서 그 요구에 따라오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사회적인 인정을 해 주지 않는 동료들이나 고용주의 일 스타일에 부딪치면 수치심과 죄책감과 두려움을 체험할 수 있다.

삶에 쫓기는 자는 매일 삶에 자유함을 부여해야 한다. 서두르는 것을 멈추고, 노는 것을 즐기며,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배우며 정력을 여러 면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아내와의 정규적인 데이트와 아이들과의 정규적이면서 특별히 놀러 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생활양식에서 큰 변화를 가지기란 어렵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씩 일련의 변화를 이어가면 큰 변화도 성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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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과 노는 것, 활동하는 것과 쉬는 것 사이에는 밸런스가 필요하다.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식의 경험이 절대적이다. 예수님의 예는 좋은 모범이다.

눅 21:37-38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聖殿)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 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사회는 일과 휴가를 제공한다. 휴가가 때로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생각할 시간을 주진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의 의미와 우리 삶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진 않는다. 안식은 일을 멈추고 쉬는 것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의미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생각에 이르게 한다.

마태복음 11:28-29를 묵상해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일 중독을 극복하려면 '복음을 내면화'하여 그것을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자신 있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을 내면화한다는 것은 마태복음 11:28-29절이 얘기하는 메시지이다. 예수께 모든 짐을 가지고 나아가 맡기며, 그 분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배우면서 인생의 가치관을 바꾸어갈 때에 세상 일변도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바뀌며 이제껏 누리지 못했던 하나님의 평강이 '영원한 세상에서의 소망'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들어 오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영적인 희락을 가질 수는 없지만 영적인 여정을 심화할 수는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인 영적인 심화를 하는 것인가. 먼저 '즐거움이 어디서 오는가' 대한 '나의 영적인 가치관과 신념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 잠21:17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또한 즐거워하는 것만 아니라 흥미가 부족한 것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즐거움보다는 만족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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