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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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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질서

/ 일하시는 하나님 /

신대현 목사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처음 만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일하시는 하나님이다(창 1:1).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의 결과들에 대해서는 "좋았더라"는 말을 듣는다(창 1:4, 10, 12, 18, 21, 25, 31). '좋다'(Good)의 기준은 "하나님의 보시기에"이다. 왜 "하나님의 보시기에"일까?

일반적으로 '좋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경우는 어떤 대상의 적합성 내지는 품질(quality)의 결과로 인함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좋다"는 창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의견이 기준이 되어 평가된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내키는 대로 무턱대고 좋다고 하셨을까? 아니다. 창조물들은 선하신 하나님(시 100:5)의 일의 결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함을 내재하고 있었고, 하나님은 "좋다"는 말을 통해서 창조물 안에 내재된 당신의 선함을 인정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창조물 안에 담아 놓으셨다. 일의 결과는 곧 그 일꾼의 인격의 연장이며 일꾼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일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고 일하는 자로 인해 그 일에 의미가 부여된다.

반면에 '죄'는 일꾼과 일의 결과를 분리한다. 곧 일꾼의 인격을 일의 결과에서 분리하고자 한다. 아담과 하와의 변명을 들어 보라.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13). 이것은 일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 태도가 오늘날 발전해서, 일의 결과와 성취만 괜찮으면 그 일을 행한 과정과 심지어 그 일을 행한 자가 누구였는지를 상관하지 않는 사회 풍조가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의 사회는 인격이 담기지 않은 일들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일의 결과를 보실 때 결코 그 일만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일과 함께 그 일을 행한 자의 인격과 의도를 반드시 보신다. 왜냐하면 일의 결과는 곧 그 일을 행한 자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성경의 한 예를 살펴보면, 세상이 홍수로 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 일의 동기가 된 사람들의 인격을 보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결과를 선하게 추구하려 하기 이전에, 우리 안에 선한 성품과 의지와 행동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함'을 자신 안에서 실천하려 하지 않고 일의 결과에 먼저 적용하려 했다. 사람의 방법으로 일의 결과를 선하게 추구하려 해서 생겨난 결과는 직업의 계급 구도였다. 인격을 선하게 만들려 하지 않고 직업을 선하게 만들어서 선한 일의 결과를 얻고자 한 것이다.

우리 문화 속의 직업 계급을 보자.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거룩한 직업에는 목사, 선교사, 간사 등이 있고, 돕는 직업에는 의사와 간호사, 교사, 변호사, 사회 사업가 등이 있으며, 소위 세속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업에는 사업가, 세일즈맨 등이 있다.

과연 하나님도 이런 관점으로 사람과 일의 관계를 바라보실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처럼 일을 한다. 사람은 일하는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5, 15).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 세계를 사람의 손에 맡기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셨으며, 계속해서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에게 양식을 주시고(시 145:15-16; 마 6:11), 창조물을 보존하시고(시 36:6; 골 1:17),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을(요 5:17) 해오셨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스스로 일을 해나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창의력을 발휘하고, 양식을 생산하고,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모습을 보이는 실례(實例)였다. 그는 동물의 이름을 지어 주는 창의력을 발휘했고, 에덴 동산을 경작함으로 양식을 생산했고, 그곳을 다스리고, 지키고, 하와와 가정을 이루면서 창조 세계를 보존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지키는 삶을 살았다.

이처럼 사람은 일하는 사람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동역자의 신분을 가졌으며, 그 안에서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 따라서 사람의 일은 창조 세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한 책임이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행하는 자의 삶의 필연적인 모습이고, 그 안에서 나타나는 일의 다양성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다양한 만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모두 수평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모든 직업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며 결코 높고 낮은 계급으로 분리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의 귀천이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인가 하는 것과 그 일에 임하는 자의 인격과 태도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회복해 주시는 인격을 가질 때에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하며, 일에 대한 참 태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과 이 일에 임하는 자의 인격과 태도가 영적인 것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하실 때에 물질적인 것, 감정적인 것, 지적인 것을 모두 동원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의 영역과 그 일에 임하는 우리의 인격과 태도는 전인적이어야 한다.

크리스천 직장에 들어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부름이 있는 일터가 아니며, 직장에서 신우회를 조직하거나 가정이나 다른 자영업을 하는 자들의 경우에 개인 묵상이나 전도에만 열심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직장에서든지 그리고 어떤 직업에서든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회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고, 사람들의 감정적인 필요들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배워 가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이 회복해 주신 자기 자신의 전인적인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손상된 인격을 가진 자는 손상된 세상을 온전케 할 필요로 인해서 일하지 않고, 자신의 성취를 위주로 일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야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깨진 부분을 먼저 보게 되며, 그것을 세상이 제시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직업의 다양성은 자신의 손상된 부분을 메우고 자아를 성취하기 위한 선택 사항이 된다. 하지만 일하는 크리스천에게는 성취욕으로 인해서 직업이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필요 때문에 다양해진다. 그 필요에 임하는 모든 크리스천의 일은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로 나뉠 수 없다. 크리스천의 영성은 직업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에 임하는 인격과 태도에서 나타난다.

온전한 인격과 태도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 곧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인정하시는 일을 하고 그분을 높이는 일을 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크리스천의 진정한 영성은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알고, 경험하고, 그분께 반응하면서 그분의 창조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시다. 신약 시대만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그랬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모든 일이라고는 말하지만 그래도 영원한 가치를 지닌 일과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 않는가? 과연 우리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만을 중요시 여겨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적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소중한 일들을 너무 쉽게 버리기 때문이다. 그 배후에는 영원한 일을 위해 잠시적인 일 혹은 세속적인 일을 버린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영원한 세상만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으신다. 아마 하나님께서 영원성만을 생각하셨다면 이 세상은 창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에 제한된 세상 곧 역사를 가진 세상을 창조하셨다.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된 유한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벧후 3:10-13). 그리고 유한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평가는 "좋았더라"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상은 하나님의 선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비록 유한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간이 죄를 짓는 일을 제외하고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

하나님은 이 유한한 세상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행함에 따라 영원한 나라의 상을 약속하셨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24). 결코 이 땅에서 영원한 나라의 일을 해야만 영원한 상을 주신다고 하지 않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성실과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셨다. 이러한 명령을 내리신 배후에는 당신의 백성들의 삶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양식, 옷, 거처 등을 염려하는 분이시다(마 6:32).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필요를 섬기는 모든 일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양식(Lifestyle)을 바꾸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의 양식(work style)도 바꿔야 한다.

디도서 2:9-10에서 바울은 일의 양식에 대해서 다섯 가지 중점 부분을 말해 주고 있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첫째는, 권위에 대한 순응이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순종하여"(Slaves are to submit to their masters). 사회의 약속을 따르고, 자기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들의 약속에 신실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다. 둘째는, 맡은 바 책임 영역에 대한 최선의 노력을 통해 타인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범사에... 기쁘게 하고"(please them in all things).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일을 위해 바른 도구와 바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때문에 동일한 자세로 일에 임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셋째는, 인간관계의 갈등 해결이다. "거스려 말하지 말며"(They must not answer them back). 갈등이 생길 때에 정직과 예의를 갖추고 반응하면서 건전한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길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 경쟁으로 인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해가 되는 경쟁은 피해야 하며, 건설적인 일을 위해서는 손해를 입더라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는, 맡은 일에서의 정직과 성실이다. "떼어먹지 말고"(steal from them). 근무 시간을 정직히 지키며, 근무 시간 중에 개인의 시간을 찾아내려고 애쓰거나 개인의 용무를 회사 비용으로 쓰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는, 일에 대한 충성과 타인과의 신뢰관계이다.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they must show that they are always good and faithful).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며, 약속된 시간을 항상 점검하면서 일의 최종 기한을 맞추며,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만 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해 자신의 일터의 존재 목적이 영예롭게 될 수 있기 위해 충성해야 한다.

이 사항들은 단순히 일터의 윤리가 아니라 삶의 윤리이다. 우리의 일의 양식, 곧 우리의 삶의 양식이 바뀔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제 현장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된다.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so as to bring credit to the teaching about God our Saviour in all they do).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나님은 일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도 일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창조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빛나게 할 수 있다.

그 가르침은 거룩한 자들만의 소유가 아니다. 직업의 귀천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가 아니며, 성경은 그 직업을 가진 자의 '인격'과 그 일에 임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게 된 목적 안에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변화된 인격과 태도를 통해 우리를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 하나 하나는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외치시려는 메시지의 글자들이다. 사람이 전달하는 문학의 표현도 그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다양하냐에 따라 전달되는 호소력이 달라질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구원을 표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획일적으로 '종교적인 거룩'만을 나타낸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그 깊고 넓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풍성한 표현이 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일을 통해 나타나는 우리의 전인적인 삶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편지가 될 때(고후 3:2-3), 그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이 세상을 다양하고, 힘있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책임 있게 다스리시면서 일하고 계신지를 세상에 들려 주는 선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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