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tNt설교노트 | 성경청사진 | 성경공부장르 | 생활신학 | 성경과영어 | 새벽말씀 | 간증과기도 | |






| 설교목록 | 새벽말씀 |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를 넘어서… |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를 넘어서…

<세례들 - II>

6:1-11
예수와 합하여 받은 세례

세례들 (I) <예수와 합하여 받은 세례>
생활신학: 제2부 교회질서 - 神學 유아세례

신대현 목사
[Updated 2007/2/21]

인쇄용 텍스트 / Printable Version인쇄용 텍스트 / printable version

죄인과 사망

사람에게 무턱대고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하면 별일이라는 듯이 쳐다보든지, 자기가 왜 죄인이냐고 따질 것입니다. 사람마다 ‘죄’에 대한 정의와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죄’를 범해서 죄인이라고 얘기하는지 궁금해 할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범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죄인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근거를 두었기에 다짜고짜 아무나 붙들고 죄인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까?

어떤 죄를 지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얘기하기에 앞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시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망”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하지만 이런 설명을 듣고, 납득하지 못하여 크게 반발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 한 사람(=아담) 죄 지은 것 가지고 어떻게 모든 사람이 죄 지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 아닙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누구신대(혹은 뭔데) 내가 죄인이라고 하고, 내가 죽는다고 합니까?”

하지만 반항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해진 사실입니다(히 9:27). 죄가 없다면 ‘사망’이라는 형벌이 없겠지만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사람에게 내리신 형벌입니다(창 2:17; 3:17-19). ‘죽는 자’는 예외 없이 모두 하나님의 형벌 아래에 있는 죄인이며, 이 세상에 안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졌느냐고 따져 물으면서 죄 지은 ‘항목’이라도 알려달라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죄의 항목을 밝힌 후에 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여전히 그가 죽는다는 사실 자체로 인하여 그는 죄인입니다. (두 번째 문단에서 설명할 ‘죄란 무엇인가’를 참조).

죄가 ‘인생의 종국(=사망)’에 이르러야만 그 실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사람 안에서 (선과 반대되는) ‘욕망(=죄의 소원, 창 4:7)’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벨을 죽인 가인의 경우에는 죄가 ‘시기‧분(憤)‧원수 맺음’과 같은 욕망의 모습으로 가인 안에서 그를 향해 자리를 트고 있었습니다. 죄는 인생 여정 가운데 언제든지 느낄 수 있는 ‘실체’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갈 5:19-21) 중에서 하나라도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의 태도를 보이기까지 합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하고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기준을 떠나 자기 기준대로 사는 것’입니다. 죄인은 기회가 생기거나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적당한 기준을 적용시켜(=작동시켜)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기준과 반대되는 것을 하며 삽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자기 기준에 따라 행동한 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죄의 결과로 사람에게는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고된 형벌이었습니다(창 2:17,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사망은 사람이 ‘생각 속에서’ 가볍게 잊어버리거나 저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죄 값으로 반드시 치러야 할 삯이며, 모든 사람을 두려움에 휩싸서 일생토록 종노릇하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땅에서 그 존재를 삼켜버리는 형벌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자’이고, 그래서 그 모습으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생명을 취하여(=얻어) 죽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가 생명에 가까이 오는 것을 막으셨고, 그들을 에덴에서 내어 쫓으시어 그들로 자기들이 죽은 자라는 것을 철저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로마서 6:3

더군다나 하나님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죄의 실체를 가르쳐 주시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사람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롬 5:13).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죄’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때까지 행하고 있던 것이 ‘죄’임을 가르쳐 준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이 주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방인들은 어떠합니까? 이들의 상태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의문(儀文=기록된 율법)으로 주어진 율법 없이도 그 마음에 새겨진 율법만으로 자기들이 행하는 일들이 율법을 어기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특별히 기록된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롬 5:20)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었고(롬 3:19),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롬 5:20).

예수 그리스도

죄인은 출구 없는 인생입니다. 육체는 자기 감옥입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한 순간의 죄가 정죄를 불러오고, 모든 법을 다 어긴 것이 아니라도 하나의 죄에 대한 형벌로 인생 전체가 형벌을 당합니다. 그 육체가 죽고, 새롭게 창조되는 것 밖에는 그 감옥을 벗어날 다른 해결책이 없습니다. 육체가 죽는다고 해서 자살을 시도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죽는 일은 했다고 해도, 내 스스로 나를 창조해 낼 수 없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우리) 대신 죽기 위하여 육체가 되셨고, 내(우리) 죄 값을 치르시려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내(우리)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셨습니다. 부활은 내(우리)가 살아난 사건입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은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않는 것입니다(고후 5:16).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이제 나(우리)는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이 모든 과정을 요약하는 말이 ‘세례’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4).

나오는 말

세례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 6:11) 하신 명령을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이상 죄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산 자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수없이 나오는 유사한 표현이 있는데,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안에서”입니다. 이 모든 말이 세례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과 하나 된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우리에게 감옥이었던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례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산 자’로서, ‘생명 있는 자’로서,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주면서 ‘예수님 안에서’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 예식(例式)으로가 아니라 ‘세례가 지닌 의미(=예수님께 헌신과 예수님과 하나 됨)’로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