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13
끝까지 기다리는 자의 복

신대현 목사

예언의 두 증인(5-7절)

앞에 “다른 두 사람”이 나타나 서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이들은 예언의 증인으로 세워진 자들입니다(참조 신 19:15). 그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고 묻습니다(6절).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이 얘기되어 왔으니 이것은 다니엘이 묻고 싶었을 질문입니다. 그 다른 사람은 좌우 손을 하늘을 향하여 들고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키며 맹세하여 대답합니다(7절). 이런 자세는 그의 맹세하는 바가 온전히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상징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부른 것은 그 맹세가 영원하다는 확인입니다. 맹세의 내용인즉 시대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며(한 때 두 때) 그 가운데 성도는 힘이 다 없어지기까지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하나님이 역사의 흐름을 반전시키시어(반 때) 성도는 가장 고통스러울 그 때에 역설적으로 구원을 가장 크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참조 눅 21:28), 그렇게 될 때 모든 일이 끝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려 영원히 맹세하여 주신 말씀인 것을 압니까? 그 말씀의 확실함을 붙들고 삽니까?

기다리라(8-13절)

다니엘은 깨닫지 못하여 더 자세히 묻습니다(8절). 하지만 주어진 답은 “갈찌어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9, 13절)였습니다. 다니엘이 받은 사명은 예언을 받아 기록하고 봉함하는 것까지이고 이후 할 일은 부활 생명을 받기까지 기다렸다가 끝 날에 그것을 받고 업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13절). 단지 그가 질문을 했기 때문에 주어진 예언은 9장 27절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칠십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의 다른 절반’(일천이백구십 일)이었습니다. 9장 26, 27절에서는 전쟁이 끝까지 있을 것과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질 것이 얘기된 반면 여기서는 그 절반 기간에 ‘연단을 받으며 기다리는 자’와 악인의 상반된 태도가 언급되어 있습니다(10, 12절). 특별히 기다릴 때는 날짜만 세고 있을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인내해야 할 것을 알리기 위해서 기다려야 할 시간을 한 이레의 절반보다 조금 더 긴 시간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일천삼백삼십오 일).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로서 나는 나의 계산만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바라보면서 끝까지 인내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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