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23
살아있는 믿음

신대현 목사

신상에게 절하지 않을 것이라(13-18절)

집단 속에 살다보면 그 집단이 요구하는 것에 수동적으로 따르며 살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면 그 집단 안에서는 별 문제의식을 못 느끼며 삽니다. 안주하다보면 괜히 신앙문제를 들먹이거나 고집해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을 죽이는 일입니다. 믿음은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에 반응해야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도전으로 임하는데 어찌 삶에 아무 변화가 없을 수 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을 둘러싼 집단의 요구는 우상숭배였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인하여 세상 요구에 대해 ‘절대로 안 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상숭배, 음행, 거짓말, 착취 등 금방 손으로 꼽아 보아도 믿는 자로서는 ‘절대 안 되는 것’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까? 목숨 연명이 능사가 아닙니다(18절). 참 두려워해야 할 자를 두려워하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마 10:28).

상황에 순응해 주는 것이 참 화평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상황에 도전을 던질 때도 반드시 있습니다.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풀무에 던져진 세 친구(19-23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느부갓네살 왕이 분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하 용사들에게 명령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절대 권력자의 눈 밖에 벗어난 것이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풀무에 던져졌습니다(23절). 그때까지 하나님의 구원은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죽은 것입니다(23절).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백성은 죽음 앞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살리신다’는 인간적인 공식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육체 문제를 다루는 분으로만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더 깊이 생각하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갖는 소망이라면,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시되 영원히 살리신다는 부활 소망입니다. 

내 삶을 좌우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내 신앙을 못마땅해 할 때, 나는 살기 위해 신앙의 태도를 감춥니까? 그 위협 앞에서 내 신앙은 살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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