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들어보라

신대현 목사

[온유함] 4장 하나님의 다스림

즐거운 간증(1-3절)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기쁨으로 증거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피부로 체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몸소 체험한 사람의 마음은 그의 마음과 같이 즐겁습니다(2절; 삼상 2:1; 합 3:18).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체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은 ‘하나님 나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3절). 사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는 자는 그의 나라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하심 속에서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원 얻는 자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심지어 죽어가는 예수님 곁에 있던 강도도 예수님의 나라를 인정한 그것만으로 구원을 얻지 않았습니까?(눅 23:42, 43) 하나님 나라를 고백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들어와 자기 분수를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벧전 5:5, 6). 

나는 내 삶에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즐겨 말합니까? 하나님이 내 삶에 왕이신 것을 인정하고 그 나라 백성답게 살아갑니까?

영적 나태(4-7절)

느부갓네살은 본격적으로 자기가 체험한 구원을 간증합니다. 그는 2장에 이어 두 번째 꿈을 꿉니다. 왜 그에게 두 번째 꿈이 임했을까요? 그는 첫 번째 꿈을 꾸고 난 후 다니엘을 불러 해석을 듣고 하나님이 모든 왕의 주재인 것을 고백했습니다(2:47).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참조 3:28).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은 있되 하나님께로 돌이킴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간증 첫머리에서 자기 집에 편히 있으며, 자기 궁에 평강할 때 꿈을 꾸었다고 얘기한 것은 그러한 자신의 영적 나태를 말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영적으로 둔해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두 번째 꿈을 꾼 후에 다니엘을 찾지 않고 늘 하던 습관대로 박수와 술객과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들인 사실입니다. 이런 태도를 잠언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 26:11).

나는 동일한 어려움을 반복해서 겪고 있진 않습니까? 혹시 영적인 긴장감을 늦춘 체 옛 습관을 다시 행해서 찾아오는 결과는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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