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글자 쓰는 손가락

신대현 목사

술잔치(1-4절)

멸망 전에는 마음의 교만이 있습니다(잠 18:12). 목이 곧아서 자주 책망을 받는 자에게는 갑자기 패망이 찾아옵니다(잠 29:1). 벨사살 왕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적어도 경외심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였습니다. 자기 아비 느부갓네살 왕이 칠년을 왜 짐승처럼 지냈는지 분명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22절). 그러나 그는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을 뿐더러 술잔치에 하나님 성소의 기구들을 가져와 술잔으로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술 취함은 어두움의 일이어서 사단적 자신감과 교만을 낳습니다(4절; 롬 13:13).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못하고 인간 나라로 끝나는 인생들은 결국 술 취함으로 자기 생명을 죽입니다(고전 6:10). 하나님은 세상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형제라 하는 자가 술 취하거든 그런 자와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명했는데, 술 취함은 다른 형제까지 패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고전 6:10). 벨사살의 술 취함과 함께 바벨론의 영화가 막을 내린 것도 같은 결과입니다.

나는 술 취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까? 술만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술친구를 가까이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응하고 있습니까?

벨사살의 번민(5-9절)

여흥이 무르익을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분벽에 글자를 썼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는 곳에서는 육체의 즐거움이 한 순간에 끝날 수 있습니다. 왕은 거의 기절할 듯 겁에 질려 크게 소리 지르며 내놓으라는 술객들과 술사들과 점쟁이들을 불러들여 글자를 읽고 해석하게 했습니다. 큰 포상도 내걸었습니다. 출세와 권세가 한꺼번에 걸려있는 엄청난 상이었습니다. 세상이 크게 여겨 내놓을 것은 고작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고전 2:12-14).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자로 써있다고 해서 성경을 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은 궁극적으로 영적 계시를 깨닫지 못해서 가지는 기갈입니다(암 8:11-14).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행세해도 결국 스스로 우매한 것에 속아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귀가 열려있습니까? 성경을 읽기 전에 성령님께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자의대로 해석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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