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여호와 중심의 출발

신대현 목사

중심 내용

고레스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여호와의 백성에게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는 조서를 내린다. 그리고 사방의 이웃들이 그 전을 건축할 예물을 드리며 돕는다.

 

메시지와 적용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중심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은 실로 나라의 새 출발이었다. 출애굽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가 모양을 드러냈듯이 바벨론에서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주는 사건이었다.

그 정체성 회복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일'이었다. 왜 하필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것일까. 고레스는 그 의미를 알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조서를 내렸는가. 

여기에는 온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묻어있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이란 존재는 어떤 의미인가. 정치적으로 보면 옛 시절에 한낱 한쪽 구석에 있던 나라였고, 지금은 사로 잡혀온 포로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보면 이스라엘은 모든 이방 나라들의 제사장으로 세워진 나라였다(출 19:6). 

하지만 여호와의 전이 없고야 어찌 여호와의 제사장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고레스가 다른 것이 아닌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한 데에는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다시 회복시켜 온 땅의 구속의 질서를 바로 잡아 이방인들인 자기들도 하나님의 구속의 질서와 역사의 바른 위치에 놓이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열망이 어찌 그의 생각에서 나왔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해 표출된 것이었다. 마치 베드로가 온전히 깨닫지도 못했으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알게 하심을 인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17)라고 말한 것과 매 일반이다. 

그랬다. 이스라엘이 다시 나라의 정체성을 가지는 데에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의미를 둘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에 이방이 동(動)하여 그들을 돌려보내려 했겠으며, 그것도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도록 하게 만들었겠는가.

예배의 회복

이렇듯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여호와께 있었다. 여호와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리고 또 생각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전은 곧 예배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단지 여호와의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예배의 삶을 가지는 데에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출애굽의 목적과도 동일하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애굽을 떠나야할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출 5:13). 또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worship)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출 7:16).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내시는 유일한 이유라면 그것은 당신께 예배하는 자들로 그들을 세우시려는 것이다. 그것은 출애굽 때에도 그랬고 바벨론에 사로잡힌 자들을 다시 불러내실 때에도 변하지 않는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하겠는가? 

오늘날 교회를 갱신하려는 자들은 이 메시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교회 갱신은 여타의 외부적인 제반 사항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회복에 있으며, 그 중심에는 '예배의 갱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배만으로도 교회는 갱신될 수 있는 것을 에스라서 첫머리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바른 정체성으로 방향을 향할 때에 이방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게 되어 있다(5-11절). 이는 고레스 때만 아니라 출애굽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출 12:36). 왜냐하면 온 땅의 중심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일은 이스라엘만의 역사가 아니라 온 세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도 동일한 약속을 하지 않으셨던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 6:33).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데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5절). 성령의 움직이시는 대로 좇아 살아가는 것이다. 성령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우리를 이끄시는데, 바로 그 삶을 좇아가는 것이다. 

이 시대에 성령이 이끄시는 하나님의 성전은 어디인가. 혹 그 성전이 무너졌다면 그 무너진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교회이며 또 '나 자신'이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일으킬 곳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전을 이루도록 그 성전의 벽돌로 삼아 주신 '나'이며, 또 그러한 '나' 된 자들이 모여 이뤄 가는 교회인 것이다(고전 3:16, 17; 고후 6:16; 엡 2:21). 

그 나라를 세울 역군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그 감동의 소명을 따라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인 교회를 세우는 일을 향해 앞서 달려가며, 그 나라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의 빛으로 하나님의 부르시는 날까지 서있기를 다짐한다.

기도

주님,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불러내시는 일을 한 번도 그치신 일이 없으십니다. 그 중심에 서 계시어 당신의 백성의 달려갈 길의 푯대가 되시는 주심. 이 일에 온 땅이 주의 섭리대로 움직이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주권을 봅니다. 주님, 주님의 나라의 제사장으로 온 세상을 향해 빛을 내 비취는 저의 삶이 되게 해 주세요. 언제나 주님의 성령이 제 마음을 감동하시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저의 삶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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