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따르는 판단

본문에는 초막절 마지막 날에 성전에서 행하신 주님의 가르침이 계속되고 있다(참조, 7:37). 초막절은 유대인들이 광야 세월 중에 초막에서 지냈던 것을 기억하는 절기였다(레 23:43). 후대 유대인들은 등대에 불을 붙이는 예식을 이 절기에 더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불기둥으로 자기들을 인도하신 것을 기념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예식과 연결하여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알리신 것이다(12절). 더욱이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never walk in darkness)'란 말을 더하시면서, 불기둥은 광야의 행진을 비추어 주었지만, 예수님은 이 땅의 영적 어두움을 비추시어 그 가운데 다니는 인생들을 생명으로 향하게 해 주는 빛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증거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고, '증거 방법'을 갖고 꼬투리를 잡았다. 예수님 혼자서 제시하는 증거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13절). 그러나 예수님의 증거는 혼자해도 충분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증거는 무언가를 입증하거나 변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기 때문에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의 증거는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구원의 방향'(14절)을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이외에 다른 증인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입증되어야 할 차원의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권세로 '선포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었다. 

정히 두 사람의 증거가 필요하다면 예수님은 아버지를 제시할 수 있었다(18절). 실상 그것은 또 다른 증인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과 아버지가 나눠질 수 있다면 두 증인이겠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과 아버지의 증거는 한 증거였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증거를 혼자의 증거로 여긴 것은 '육체를 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15절). 예수님의 육신만 보고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랬기에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는 소리도 한 것이다(19절).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19절)는 예수님의 답변에는 두 분이 나눠질 수 없는 사실과, 예수님 안에 하나님에 관한 계시가 담겨있는 사실(1:18; 히 1:2)이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연결시켜보지 못하는 오류는 그 때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범해진다. 하나님은 믿어도 예수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을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로 전락시켜서 '하느님'으로 바꾸어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융화할 수 있는 종교로 만들어 버린다. 예수님을 내세우는 순간 기독교는 독단이 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분리시켜 버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어떠한가. 예수님을 거부한 이래로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민족의 하나님으로 제한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과연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제대로 예수님을 보고 있는가. 이런 질문자체가 우문(愚問)일지 모르나 너무나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세속화되고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눈이 성경적으로 열려야 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고 하겠다.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육체적 판단을 영적으로 돌이켜 주기 위해서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셨다: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죄 가운데 죽으리라"(21-24절). 여전히 육체의 관점을 가진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살하려 하는가 자문했다(22절). 어처구니없는 반응이 아닌가. 이 말씀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가져야 할 바른 관점을 암시해 준 것이다. 곧 이 말씀은 14절과 동일한 의미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향'을 따라갈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메시아를 눈앞에 놓고도 믿지 못하고 죽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래서 난 자의 눈'으론 '위에서 난 자'의 신분을 알 수 없고(23절) 끝내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지만 위에서 난 자의 말을 듣고 그 방향을 따라가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12, 24절). 

'그'(24절)를 언급한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네가 누구냐"(25절). 예수님의 답변은 이제까지 얘기의 요약이었다고 하겠다: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25절). '처음부터'는 언제부터를 뜻하는가. 이는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한 그 때부터만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있을 때부터를 포함한다고 하겠다(참조, 1:1). 그렇단 얘기는 '네가 누구냐'는 질문의 답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후로 지금 예수님이 유대인들 앞에서 얘기하시고 계신 그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임한 모든 계시의 말씀들 안에서 주어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한 마디로 하면 태초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구원의 방향'을 따라갈 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방향의 끝은 '십자가'였다: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28절).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의 대속의 죽음을 예언했다. 그것은 메시아 사역의 절정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려면 그 죽음까지를 연결해 볼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오해는 여기에 있었다. 메시아를 바랬지만 죽음은 생각지 않았고, 승리의 모습만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기야 예수님은 그런 승리의 이미지를 유대인들에 안겨주기에 충분한 일들을 행하셨다. 이미 여러 이적들을 행하시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으셨고 또 메시아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일으킬 정도로(7:41)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셨다. 그러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유대인들 안에서는 '이자가 왜 이리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란 불만이 뿜어져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예수란 자가 정말 그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줄 자인가'란 일말의 의구심이 사라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었을 유대인들은 28-29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예수님을 향해 180도 호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30절에는 "이 말씀을(28-29절)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는 말이 나온다. 도무지 본문의 문맥을 따라가면 그들에게 믿음이 생길 상황이 아닌데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믿었다는 얘기인가. 아니다 다를까 31절 이후에는 그 '믿음'이란 게 참 믿음이 아니었음이 금방 드러난다. 그 '믿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갈등을 빗었으며 심지어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까지 몰아세운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단 얘기는 28-29절의 예수님의 말씀의 내용을 그들이 뭔가 잘못된 관점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밖에는 안 된다. 그러면 그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단 얘기인가.

예수님이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 인줄 알고..."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이것을 '십자가'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이 자신의 인간적인 승리를 위해서 자기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얘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그들은 인자를 높일 수 있는 주체로서 예수님이 자기들을 지목했다고 보았고, '든다'는 말을 혁명을 지지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게다가 예수님은 자기가 들린 후에는 자기의 말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할 것이라'(28절)고 했으며 또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29절)는 언급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하던 그들의 행동은 누그러졌고 내친김에 그들은 '메시아 대권 주자'를 밀어주는 차원에서 예수님께 전폭적인 신뢰를 던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30절이 언급한 바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는 말씀 안에 함축된 배경이라고 하겠다.

육체를 따라 판단하게 되면 영적인 얘기에도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같은 설교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갖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야심을 채우는 자도 있다. 관점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을 구원자로도 볼 수 있고, 혁명가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며 믿고 따르고 있는가. 그 분은 '어두움에 다니는 내 길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실 분'이라고 선포하셨는데 과연 그 생명의 빛이라는 게 내게는 어떤 의미인가. 뭔가를 뒤집은 후에 찾아올 그런 광명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인가. 나의 눈은 '위엣 것'에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아래 것'으로 위를 해석하며 보고 있는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에서 과연 '십자가'까지를 볼 수 있으며, 또 처음부터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매번 '그리스도'를 발견하려 하고 있는가. 솔직한 질문을 던지면서 예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살펴 볼 일이다.

주님,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의 그 선포의 내용을 다른 관점으로 이해한 유대인들의 모습이 왠지 남의 시대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서 성경 말씀을 따른다고 하면서 사람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진리로 사람들을 인도하기보다는 이 땅에서 소모될 것들을 위해 힘을 쓰도록 미혹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말씀을 해석하되 주께서 처음부터 말씀해 주신 것을 다 보지 않고, 부분을 취하여 몇 배로 부풀리며 떠드는 자들이 횡행하는 시대가 지금의 시대입니다. 주님의 인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이 그저 말씀의 문자를 부분으로 취하여 얼마나 복음을 잘못 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보되 구원의 역사 가운데서 계시해주신 주님의 모든 말씀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럴 때에 교회는 참 예수님의 모습을 따를 수 있으며, 생명의 빛으로 향하는 바른 길을 좇아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주께서 이 일을 시작하신 만큼 또한 주의 백성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일에 조금의 실수도 없으실 것을 확신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