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3
예수님의 도전적인 사역

신대현 목사

죄를 사하는 권세(1-8절)

앞에 사건에서는 귀신이 자기 정체를 스스로 밖으로 드러내면서 자기 생각을 얘기했고, 그들을 제어하시는 예수님의 선포와 권세도 밖으로 너무도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본 동네로 건너 오셨을 때 여기서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믿음과 생각이 속에 숨겨 있으며, 예수님의 권세도 치유 사역에 앞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믿음과 생각을 읽으시는 능력과 용서로써 나타납니다. 먼저 예수님은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시기 전에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어떤 서기관들은 속으로 이것이 참람하다고 생각하는 중에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생각을 드러내시며, 치유와 용서 중에 어느 것이 쉽겠냐고 물어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병 고치는 능력을 대단하게 보아왔던 무리들에게 당신의 더 크고 참된 권세 곧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곳에서 나타나길 기대합니까? 하나님의 큰 권세로 사람들의 내면에 회개가 일어나길 기도하십시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9-13절)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은 마태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마태는 분명 그분이 얼마나 유명하고 권세가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이 자기 동네를 지나실 때에 주목했을 것이지만 무리들이 에워싸며 동행하고 있어서 설마 예수님이 자기에게 다가와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실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으로 인하여 손가락질을 받으며 비굴스럽다 할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자기에게 그 큰 인물이 다가와서 따르라고 부르시다니…! 마태는 군말 없이 일어나 좇습니다. 당장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음식을 대접합니다. 이내 소문이 퍼지고 마태의 친구들이 몰려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자리는 마태와 그 친구들에게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눈에 이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종교 예식에 있지 않고, 죄인을 부르시는 데에 있습니다.

예식이 너무 엄격하여서 기쁜 감정조차 나타낼 수 없는 숨 막히는 점잖은 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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