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35
형제의 죄

신대현 목사

권고(15-20절)

예수님은 길 잃은 양(12-14절)을 찾을 구체적인 안내를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한” 경우를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죄를 범한 경우만 아니라 아무 형제가 죄를 범한 것을 알게 된 상황입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한” 경우는 베드로의 질문을 통해서 뒤에 다뤄집니다(21-35절). 한 형제는 다른 형제가 죄를 범한 것을 알았을 때 그 형제를 돌이켜야 할 개인적인 책임을 가집니다. 사람들에게 먼저 그 사실을 알리거나 다른 사람(예, 목회자)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 형제와만 상대하여 권고해야 합니다. 듣지 않으면 한두 형제들을 동참시켜 그 형제의 말마다 증인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 형제들의 권고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공식적인 권징을 따르지 않으면 형제로서의 교제를 끊어야 합니다. 형제들 무리 가운데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반드시 합심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기다려야 합니다.

나는 성경이 가르쳐준 절차대로 잘못을 범한 형제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합니까? 혹시 다른 사람의 책임에 맡기고 나는 방관합니까?

용서(21-35절)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기에게 죄를 범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되느냐 하면서 일곱 번까지 용서를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일곱 번의 용서는 사람으로서 행하기 힘든 상상할 수 없는 관대함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전혀 뜻밖입니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십니다. 무한대의 용서를 뜻하신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일상에서 늘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일만 달란트 빚과 백 데나리온 빚의 차이는 너무 엄청나서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100일의 품삯에 해당하며, 일만 달란트는 그것에 육십만 배(=약 십육만 년의 품삯)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은 영원한 죽음을 불러오는 죄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주셨는데 내게 잘못한 형제를 사정없이 몰아대면서 철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악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형제를 용서하는 일이 자연스럽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용서에 비하면 내게 잘못한 형제를 용서를 하는 것이 대단치 않은 일임을 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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