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22
천국의 가치

신대현 목사

어린아이들(13-15절)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와서 예수님이 안수하여 주시길 바라자 제자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꾸짖어 막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너무도 바쁘신데 아이들까지 상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자기들이 그토록 대단하게 생각하며 따르는 예수님인데 사람들이 사회에서 대접도 못 받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자기들의 선생을 괴롭히는 것이 기가 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어린아이기 때문에 천국이 그냥 그들의 것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뜻은 그들의 나이에 있기보다 그들의 신분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정 관념 속에서 당연히 아니다 싶은 사람들이 천국의 백성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 곳에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이 뜻입니다.

나는 사람을 소개받을 때 그가 지닌 신분으로 인해 가까이하려들기도 하고 거리를 띄기도 합니까? 천국의 백성은 사회 신분에 따라 되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16-22절)

어떤 사람으로 소개된 이 사람은 청년이요 관원이며(눅 18:18) 또 부자이고 게다가 율법에 비추어보아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아무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자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달려 와서 꿇어 앉아(막 10:17)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라고 하시면서 위인(偉人)의 가르침을 기대하고 나왔을 그의 시야를 돌려 하나님을 향하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자기가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냐고 되묻습니다. 예수님이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시자 그는 근심하며 돌아섭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선을 이루는 데에만 적용했고, 지금껏 누려온 삶을 희생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으며, 이웃과 나누는 삶에서는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요구는 가난한 삶이 아니라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면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나눔이 없는 부를 책망하시지, 가난을 미화하지 않으십니다.



© OTNTFILE 신구약성경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