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2
예루살렘 사역의 시작

신대현 목사

성전을 둘러싼 갈등(12-17절)

예수님께 호산나를 외치면서 혁명이 곧 일어날 듯 고조된 분위기에 휩싸여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무리의 기대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장사하는 자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십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보였을 것이지만 이것은 목적을 잃어버린 성전에 대한 주님의 분노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나아오자 그들을 고치시는 자상함을 보이십니다. 이런 일이 전에 없었던 터라 성전을 관할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기이하기만 했습니다. 또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고 예수님이 별다르게 말리거나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자 분하여 예수님께 그 소리를 못 들었냐고 따집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성경을 인용하시면서 그 외침의 정당함과 성전 지도자들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집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는데 우리 교회는 만민에게 열려 있습니까? 그 안에서 행하는 일이 하나님께 합당합니까?

무화과나무 저주(18-22절)

“시장하신지라”는 말은 예수님의 필요입니다. 예수님은 한 무화과나무에서 필요를 채우려하셨는데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화과 때가 아닙니다(막 12:13).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여 말려버립니다. 무화과의 때는 ‘자연의 시간’이요 예수님의 필요와 요구는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자연을 지으신 이가 ‘자연의 시간’에 스스로 끌려 다니며, 아무 요구도 못하고 기다리는 지경이 될 수 없습니다. 역사가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야 합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안 되어 보이는 것이라도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사건은 성전이 예수님의 요구를 채우지 못했을 때(13절), 예수님께서 성전이 준비될 때를 기다리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 심판으로 무너질 것을 암시합니다(23:38; 24:2).

나는 하나님의 요구를 사람들이나 상황의 요구보다 앞세우며 행합니까? 하나님의 요구가 확실하다면 사람이나 상황에 굴복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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