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4
청함과 택함

신대현 목사

청한 사람들(1-7절)

예수님의 사역의 밭이 예루살렘이니만큼 대부분의 예수님의 선포는 예루살렘 성전에 기반을 둔 기득권층을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은 종교 지도자들과 끊임없이 부딪칩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 비유하십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합니다. 그들은 임금을 모르는 어떤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백성 중에서 초청을 받은 특권 계층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상업차로 가고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입니다. “자기 밭”, “상업”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재물에 있음을 암시합니다(6:24).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심이 없고, 돈 되는 데면 마다않고 우선순위를 둡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일깨우는 종들이 그들에게 이르러 하나님의 요구를 전하자 그들을 제거합니다(23:37).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필연적입니다.

오늘날 돈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신앙인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신앙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사는 모범을 보이도록 기도하십시오.

예복(8-14절)

천국 문이 사거리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열리듯 하나님을 가까이서 누리는 특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서 떠나고 모든 자에게 열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의 요구가 바뀌거나 느슨해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 청함 받은 사람들이 합당치 않아서 혼인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임금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아쉬워서 아무나 ‘와 주기만 하면’ 고맙다고 해야 할 상황이 아닙니다. 혼인 잔치는 전에나 지금이나 그곳에 합당하게 “예복(=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한 삶)”을 준비한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진지함도 없이 아무렇게나 하고 가도 자기를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임금의 벌을 당합니다. 천국은 철저히 임금의 주권으로 베풀어지는 초청이지 임금이 사람을 받들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사람이 ‘가 주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를 따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자는 적습니다.

신앙인들 중에는 심방이 있으면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나와 주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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