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3-28
화 있을찐저

신대현 목사

소경된 인도자(13-22절)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번 화를 선포하십니다. 그들의 패역한 행위에 대한 총체적 지적과 자명한 심판의 예고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천국에 관심이 없어서 들어가지도 않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랍비를 찾아 나와 묻는(예,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16) 사람들에게 빗나간 가치관을 가르쳐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들 자신이 지옥 자식인데(33절), 두루 다니며 교인을 얻어서 열심 있는 제자로 키워 유대주의 개종한 그 사람을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합니다. 그들의 패역한 가치관에 따르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이익이 하나님보다 중요합니다. 성전이나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크고 작은 것의 구별도 못하는 그들을 눈먼 바보들이라고 부르시면서 내면의 의미를 모르고 외식에 가치를 두는 그들의 무지를 지적하십니다(참조 15:11).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르치며, 교인을 얻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을 얻는 것입니다. 성도 수나 재산으로 교세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회칠한 무덤(23-28절)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은 그들이 율법의 원리를 버리고 율법의 세세한 준수에만 중요성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의로움과 인자와 충실에 바탕을 둡니다. 이 원리를 내면에 품은 율법 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만(미 6:6-8) 이것이 없는 행위는 모두 외식입니다. 겉만 깨끗하게 한다고 속이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의 변화는 속에서부터 겉으로 확산됩니다.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 행위가 바뀌지 않습니다. 속에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데 겉만 깨끗이 한다고 그들의 행위가 옳거나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라고 하시며 그들이 얼마나 눈이 먼 자들인지 알리십니다. 하루살이나 약대는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생물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부정을 피하려고 세세한 것을 걸러내지만 너무나도 확연한 부정은 통째 삼킵니다. 사람에게만 옮게 보이려는 임시방편이요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철저히 배제하는 태도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법 준수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옳고 인자한 분인지를 나의 충실한 삶과 사랑하는 삶을 통해 나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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