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9-39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신대현 목사

선지자를 구박(29-34절)

이스라엘에서는 배역의 역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선지자들이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 조상의 배역을 이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이제 와서 선지자의 무덤을 쌓고 의인의 비석을 꾸민다고 배역을 은닉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기념비를 세우면서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하는 것은 과거를 은폐하려는 정치적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런 말을 의도적으로 했다는 그 자체가 그들 스스로 배역의 조상과 한 계보임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지적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단정적으로 그들을 독사의 새끼들로 부르시고 조상의 양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외식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지만 이내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선생들(=서기관들)을 숱하게 죽이고 핍박하여 자신들이 배역의 계보라는 정체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살전 2:15-16).

사람의 눈에 감춰진다고 하나님 눈까지 속일 수 없습니다. 죄를 은폐하려는 노력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태도입니다.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운명(35-39절)

예수님은 구약의 처음과 마지막 의인을 언급하시면서 (참조, 역대하는 히브리 성경 마지막 책이며, 사가랴[=스가랴]는 대하 24:22에 나옴) 땅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배역이 지금 절정에 달했다는 암시입니다. 유대인들이 형제를 십자가에 다는 일은 행할 수도 없고 행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 중에 더러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 예견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포함된 것으로써 이스라엘의 배역이 왜 이 세대에서 끝에 달했는지 암시해 줍니다. “내가… 모으려 한 일”이란 말도 하나님 스스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려 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것을 원치 아니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이제 하나님께 버린바 되는 일만 남습니다. “너희 집(=성전)”이 황폐하여 버려지는 일이 이를 상징할 것이며, 예수님을 환영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을 떠나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당신의 품으로 모으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자가 하나님의 품을 체험합니다. 그 품을 느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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