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2-25:13
예비하고 있으라

신대현 목사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42-51절)

인자가 임하기 전 세상 사람과 택하신 자에게 삶의 상황은 똑같습니다. 차이는 인자의 임함을 예비하느냐에 있습니다. 예비하는 자는 깨어있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종일종야를 안자고 주의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밤새 깨어있어 도적을 막는 것은 피곤에 지치는 일입니다. 도적이 집을 뚫지 못하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 지혜 있는 방비입니다. 마찬가지로 주가 어느 날에 임할는지 알지 못하고,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실 수 있는 상황에서 깨어있다는 의미는 주인(예수님)이 언제 오시든지 주인이 맡기신 권세를 가지고 주인의 일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올 때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봅니다. 그 종은 인자가 임하는 그 순간도 충성합니다. 난리와 환란이 충성된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반면 주인이 언제 오실지 계산하여 최대한 자기식대로 권세를 부리며 사는 자는 악한 종입니다. 그는 외식하는 자의 율에 처해져서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어느 정도 세상을 즐기다가 예수님을 믿겠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충성을 잃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슬기 있는 자들(1-13절)

예수님은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예비하는 자(=깨어있는 자)의 모습을 가르쳐 주십니다. 열 처녀는 신랑을 맞으러 나갑니다. 다섯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가고,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 당시 등은 막대에 천을 감아 기름을 묻혀서 불을 붙였기 때문에 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기름을 묻혀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등만 가지고 나간 것은 겉치레일 뿐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마땅한 준비가 아닙니다. 앞서 얘기된 외식(外飾)하는 종과 마찬가지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맡겨진 신분과 일에 합당한 준비를 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잡니다. 그들이 겪는 육체적 상황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나자 둘의 차이는 명백해집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힙니다. 그 문은 주님과 관계가 없는 자에게 영원히 열리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행하든 상황에 따라 임시방편적으로 행하는 습관을 버리십시오. 멀리 내다보는 비전을 가지고 충분하고 성실한 준비를 해 나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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