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9-27:10
회개와 후회

신대현 목사

베드로의 부인(否認)(69-75절)

예수님이 심문을 받는 동안 베드로는 바깥뜰에서 서성입니다.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내뱉은 말(26:33)때문이었는지 도망가다 말고 멀찍이 따라와서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뜰 가운데 피워진 불 앞에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 불빛에 얼굴이 드러나고(눅 22:56), 그를 알아 본 한 여종이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다그칩니다. 자기를 향한 갑작스러운 주목에 베드로는 그 사람들 앞에서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하며 일어나 앞문으로 피해 나갑니다. 다른 여자 하인이 또 그를 알아보고 묻자 맹세를 더하여 그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갈릴리 사투리를 듣고 그 일당이라고 몰아대자 이번에는 맹세에 저주를 더하여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 때 닭이 울고, 돌아서 자기를 보시는 주님의 눈과 마주쳤을 때(눅 22:61)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난 베드로는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안고 뛰쳐나가 통곡합니다.

성령의 사람만 예수님을 참으로 시인합니다(10:32; 고전 12:3). 믿음의 고백은 성령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령의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유다의 죽음(1-10절)

예수님을 죽이려면 사형의 권한을 가진 로마총독에게 넘겨야 합니다(요 18:31). 하지만 총독이 유대 종교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유대 권세자들은 참람하다는 이유 외에 다른 방도를 써야 합니다. 그들은 함께 계책을 결정 한 후(11절,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소; 눅 23:2)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예수님이 정죄되는 과정을 지켜본 유다는 무죄한 피를 팔아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그렇다고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 일에서 손을 떼어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만들려고(참조, 24절)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 자살합니다. 이는 성경이 응한 사건입니다(행 1:16, 20; 시편 69:25). 돈을 주워든 대제사장들이 주님을 값 매긴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죽은 자들의 터)를 삼았는데 이것도 예언의 성취로서(렘 19:1-13; 슥 11:12-13) 여호와를 값싸게 헤아린 이스라엘이 피밭과 같이 더러운 땅이 될 것을 상징합니다.

잘못한 일을 후회하고 그래서 일에서 손을 떼고 자책하며 지내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에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이 따라야합니다.



© OTNTFILE 신구약성경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