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2-28:10
부활하신 예수님

신대현 목사

무덤을 인봉하고 지킴(62-66절)

안식일이라고 해도 될 것을 “예비일 다음 날(=안식일)”이라고 한 이유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예비일)을 더 생각한 때문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이 안식일에 최소의 활동 범위를 정해 놓고 철저히 지켰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이러 저리 분주히 움직이면서 이방인인 빌라도를 찾아가 무덤을 굳게 지켜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고도 안심을 못하여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세력을 저지하느라 혈안이 되어 움직이며, 예수님을 적대하는 일에는 자기들이 믿는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는데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적으로 해 주신 얘기를 유다에게서 빼내어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들의 염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서 백성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여 유혹을 당하는 백성이 더 많아질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고 사상이 있어도 궁극에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일에서 하나가 됩니다. 기독교의 유일성을 끝까지 지켜 가십시오.

그가 살아나셨느니라(1-10절)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은 단지 안식일 다음날이 아닙니다. 안식 후 첫날은 율법의 안식일이 완성된 새 날이요 ‘영원한 안식일’(히 4:10)입니다. 이 날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옵니다. 갑작스럽게 지진이 나고, 광명을 띈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서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수직하던 남자들이 떨며 죽은 사람들과 같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대조적으로 여인들에게는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전해지고, 그들은 그 메시지를 듣고 무서움 중에서 기뻐합니다. 여인들은 양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안고 빨리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합니다. 노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인사를 받자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경의의 표시)” 경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 육체에 매달린 채 있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요 20:17),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고 보내십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무서움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뭔가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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