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셨나?

예수님과 율법은 어떤 관계인가?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인가? 예수님의 행하심을 지켜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고 있다고 정죄했다. 이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이나 죄인과 세리들과 어울리면서 부정(不淨)을 자처하는 것을 강하게 비난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는 듯 행동하시는 것을 보면서 율법에 대해 느슨한 생각이나 전혀 무관하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닌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17절)는 경고가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생각할 때, 그들도 자칫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율법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가질 여지가 있었던 듯 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과 율법의 관계를 분명히 밝혀주셨다.

구약을 완전케 하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했다(17절). ‘율법과 선지자’란 표현은 구약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다(참조, 7:12; 22:40). 예수님은 단지 율법만 아니라, 구약 전체를 완전케(=성취) 하러 오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는 사도 바울의 증거는 예수님의 전 사역을 되돌아보면서 구약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결론지은 말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신 바의 재확증이었다.

예수님이 구약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밝힌 데에는, 구약이 ‘성취를 기다려온 계시’였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에 따르면 구약은 그 자체로서 ‘모든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방향성을 가지고 뭔가를 내다보고 있다. 예수님은 그 내다보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이후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11:13)라고 하시면서 구약이 ‘앞을 내다본 계시’였음을 재확인해 주셨고,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갈 3:24)라는 사도 바울의 증거는 그 내다본 것인 ‘그리스도’임을 확실하게 밝혀 주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케(=다 이루시러)’ 하러 오셨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내포한다. 그것은 구약의 계시 가운데 없앨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완성을 내다볼 수 없었다면 잠시 쓰다가 지워버리거나 폐하여 버린들 누가 뭐래겠는가? 그러나 완전케 될 것이 이미 정해지고서 계시가 주어졌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임의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18절)는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모든 계시가 완전케 됨을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신 것이다. 

일점일획

일점일획이란 말은 위 사실을 극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글자 중에는 점을 찍은 듯한 모양의 글자가 있다(이오타, י). 또 획을 그은 듯한 글자가 있다(와우, ו).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글자도 계시 안에서는 자기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차라리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율법의 한 획이나 점이 떨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참조, 눅 16:17). 사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율법주의자들이 성경의 의미를 왜곡하고 가감했으며, 현대에도 얼마나 많은 ‘이성’의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이리 떼었다, 저리 붙였다 하는가? 사람들이 천지는 어찌할 수 없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손 안에서 가지고 노는데, 예수님은 사람의 통제 밖에 있는 천지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훨씬 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문구를 쓰셨다.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어떤 랍비도 이런 표현을 쓴 자는 없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서명(書名)과도 같은 표현이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난 후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다’(7:29)는 평을 한 것도 이 표현으로 시작하신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에 대해 인상이 깊었던 때문이다. 18절은 예수님께서 친필로 서명하시듯 하신 말씀이기에 구약에 대한 임의적이고 가벼운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의 계명은 모두 지켜야 하는가?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면, 예수님은 구약의 가르침, 특히 율법의 계명을 모조리 지켜야 할 것을 암시하신 것인가? 19절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다는 답 밖에는 할 수 없는 듯 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19절의 말씀을 따로 떼어 보면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겠지만, 18절과 19절이 강조하는 바를 서로 연결하여서 보면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18절에서 구약의 일점일획이 ‘다 이뤄지리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는 구약이 ‘이뤄질 것을 바라는 말씀’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그것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암시하신 것이다. 구약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보아야 할 말씀이 되었다. 물론 구약을 순수하게 ‘구약 그 자체로서’ 이해할 수도 있다. 학문적으로 구약을 다루자면 그 쓰인 문맥 안에서 ‘여전히 방향성을 내재한 말씀’으로서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에선 결코 ‘순수한 구약 자체’는 더 이상 없다. 만약 ‘복음’의 차원에서도 여전히 순수한 구약 자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 구약이 기다리는 바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주장이다. 그래서 ‘이를 행하며 가르치라’는 예수님의 요구는 더 이상 순수한 구약 자체가 아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공생애 동안 다 이뤄주실 구약을 염두에 두시고 이런 요구를 하신 것이다. 

그러면 ‘행하라’는 예수님의 요구는 어떤 뜻일까? 어떤 사람도 순수한 구약 자체를 ‘행함’으로 성취할 수 없다. 오직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자기 죄를 깨달으며(롬 3:20),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더 사모할 뿐이다. 구약 율법의 중심에 ‘성막’이 있었던 것도 구약의 백성들이 결코 율법에만 머물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성막을 향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율법을 행했더라도 또 다른 계명이 정죄하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에 머물러 의(義)를 맛볼 수는 없었다. 율법을 행하면 행할수록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가 기다리고 있는 성막을 찾아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가 이뤄주신 구약은 ‘행할 수 있는 말씀’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받고 성막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 끝없어 보이던 여정은 끝이 났다. 성막의 휘장은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27:51). 예수님께서 우리에 대한 율법의 정죄를 친히 몸에 지시고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서 십자가에서 찢김으로써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길이 열린 것이다(히 10:20).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더 이상 성막 밖에 머물러서 하나님의 용서를 거듭 찾아가지 않는다. 그 자신이 하나님을 모시는 성막이 되어, 항상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바 ‘행함’은 단지 ‘행동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성취된 구약은 더 이상 ‘사람의 행함’을 통해 또 다른 성취를 그 목적으로 가지지 않는다. 구약의 계명은 그 요구를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구약의 계명을 행하려 하는 자에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이 커지며, 하나님의 의(義)가 드러나고, 성령이 맺어주시는 열매가 충만하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하나님을 더 경외하는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 20절의 말씀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더 나은 의(義)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그야말로 문자적인 ‘행함’에 열을 낸 자들이었다. 전혀 율법과 그리스도를 연결시키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행함은 철저히 자기 의(義)였고, 도덕의 의였다. 철저히 ‘행동’에 초점이 맞춰진 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너희 의’ 곧 ‘예수님의 제자들의 의’는 그들보다 ‘더 나은 의’여야 했다. 이는 그들의 의(義)에 견준 정도차이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더 나은 의’는 항상 그보다 더 나은 의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더 나은 의’는 완전히 ‘다른 의’이다. 로마서 3장 21절은 이 의(義)를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라고 했다. 그렇다고 구약과 무관한 의가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의’라고 했다. 율법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성막으로 향하게 했다는 사실도 하나님의 백성의 의(義)가 율법 외에 나타날 의인 것을 시사한 것이다. 그 의(義)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이시다. 

행동으로만 한다면 어떻게 제자들의 의가 이십 사 시간을 율법의 행함에 매달려 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의(義)를 가지고선 도저히 그들보다 나을 수 없다. 하지만 제자들의 의(義)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의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더 나은 의’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이다. 제자들의 의는 율법 외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의(義)인 그리스도를 품은 결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제자들의 ‘행함’의 일순위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의(義)가 없다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천국이 언급되었다는 사실도 ‘더 나은 의(義)’가 행동의 결과가 아닌 것을 확인해 준다(롬 4:4, 5). 양심적으로,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 가지고는 천국이 열리지 않는다. 율법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 곧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율법을 보면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에 천국은 열리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21절 이후에 나오는 예수님의 율법 해석을 볼 때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고, 행할 수 있고,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