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리라

신대현 목사

고칠 수 없는 상처가 유다까지 이르니라(1:8~11)

백성의 상처가 몸소 느껴지는 사람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의 죄악이 유다에까지 이른 현실을 보고 몸부림치며 애통합니다. 그는 유다 성읍들의 이름 뜻을 애곡의 가사로 사용합니다. 유다의 죄악은 대적의 땅 ‘블레셋 수도’ 가드에 알릴 대외 뉴스거리가 아닙니다. 이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티클의 집’ 베들레아브라로 찾아가 재 가운데 앉아 철저히 회개할 일입니다. 재앙이 닥치면 ‘아름다운’ 성읍 사빌 주민은 벗은 몸에 수치를 뒤집어쓰고 끌려갈 것입니다. ‘밖으로 나다니던’ 사아난 주민은 두려워 나오지 못할 것이며, ‘옆집’ 벧에셀은 자기 슬픔에 빠져 남의 의지가 되어주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어떤 조직의 지도자이거나 그런 위치를 바라고 있다면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상황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로부터 임한 재앙(1:12~18)

‘근심’하는 마롯 주민은 재앙을 내린 여호와께 선처를 바랄 것입니다. 애굽의 ‘준마’를 들여온 시온의 국경도시 라기스는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의지한 죄의 근본입니다. 이곳 병거부대는 싸움 한 번 못하고 도망칠 것입니다. 타지로 떠나는 정혼한 딸에게 아비가 작별예물을 주듯 ‘신부’ 가드모레셋 주민은 먼 이국땅으로 사로잡혀갈 것입니다. 세금을 잘 내던 악십의 집들이 무너져 내려 수입을 기대하던 이스라엘 왕들은 ‘속임’을 당할 것입니다. ‘상속자’ 마레사 주민은 바벨론에게 모든 소유를 강탈당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인 고관들은 ‘원수에게 쫓겨’ 아둘람 굴에 숨을 것입니다(삼상 22:1-3). 백성을 잃은 유다의 고통과 수치는 머리털을 깎아 머리가 크게 벗어진 볼품없는 대머리 독수리 같을 것입니다.

나는 고난의 이유를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서 찾습니까? 내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일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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