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9
대로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길로...

신대현 목사

에돔 땅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40년 광야의 세월을 지난 후에 지름길을 택해야 할 일이 있었는가를 생각할 때 에돔의 길이 막힌 것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들의 삶의 태도는 어떠한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새 대제사장이 세워졌고 아론은 죽었다. 옛 죄를 옛 대제사장이 담당한 것이며, 새 세대는 새 대제사장이 거룩함을 새롭게 세워야 할 직무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님을 향해 어떤 태도가 있어야 하겠는가? 예수님의 죽음만 아니라 부활을 또한 마음에 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돔의 저지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제 나라였기 때문에, 모세가 에돔을 '형제'로 부른 것은 통과의 요청이 외교적인 타진이 아니라 형제로서의 부탁인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에돔은 칼을 운운하며 그들의 통과를 무력으로 저지할 뜻을 비추었다. 또 실제로 많은 백성들을 데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그 땅을 지켰다. 야곱과 에서가 과거에 화해했던 역사를 무색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통과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 가타부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형제애를 거부하는 에돔에 대해 왜 별 말씀이 없으셨을까.

깊이 생각해 보면 에돔의 저지는 하나님의 손의 가로막으심이었다. 이스라엘은 에돔을 통과하면서 광야가 아닌 사람이 거하는 땅을 처음 보게 될 것이었다. 40년의 유리 방황한 시기를 생각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지나면서 얼마나 부러워하며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하겠는가. 지나온 광야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몇 사람만이라도 그 에돔 땅을 차지하고픈 욕심을 부린다면 군중은 그 욕심에 얼마든지 휩싸일 수 있고, 이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지도 않으셨던 형제 에돔과의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에돔의 회답을 빌어서 당신의 뜻을 대신하셨다. 그러면서 에돔 땅은 에돔에게 준 기업이란 사실을 분명히 하셨고, 이스라엘이 밟을 땅이 아닌 것을 침묵으로 가르쳐 주셨다. 사실 에돔을 관통하는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40년 세월을 광야에서 지낸 후 이제 와서 지름길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에돔이 형제일진대 그 형제가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 흔쾌히 수락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그들과 관계를 선히 쌓아 가는 것이 더 중요치 않겠는가. 하나님은 이후 모압 평지에 도착했을 때 모세의 입을 통해 비로소 에돔이 형제이기에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심지어 애굽인도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다(신 23:7).

우리도 얼마나 많은 순간에 지름길을 택하는가. 여러 혼란한 문제들을 겹겹이 지나온 끝에, 좁다란 길의 그림자만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놓치지 않고 그 길을 택하여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 그 길이 막힐 때 하나님의 뜻에 혼란이 생겨 어찌할 줄 몰라했던 순간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잠잠히' 그 길을 막으실 때에는 분명히 뜻이 있으신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된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대강 성취'란 없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용될 수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가로막으심은 결국 좌절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시는 기회가 된다.

아론의 죽음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지름길을 택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아론과 이후 모세의 죽음이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죽음은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진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다를 바 없었다. 아론의 죽음은 옛 세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물론 모세의 죽음이 남아있긴 했지만 모세는 오히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인도자로서 그의 죽음은 옛 세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이기보다 '사람의 잠시적인 인도'가 끝나고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영구한 인도하심'이 시작될 것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서 아론이 죽을 때에 아론의 옷이 벗겨져서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옷이 입혀지는 예식이 행해진 것은 옛 세대의 모든 죄의 감당을 대제사장인 아론이 감당해야 하는 것과 새 세대의 시작에는 새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새롭게 회복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아론은 백성들의 죄 뿐만 아니라 자기 죄로 인해서도 죽음을 당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우리의 옛 모습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새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이끌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게 해 주셨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의 죽음을 보고 슬퍼했지만, 그들이 더 멀리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그 죽음으로 인해 가나안 땅으로의 진입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길이 열린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만 머물지 말고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오늘도 살아 계신 주님은 우리에게 애통을 그치고 그것을 보라고 말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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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감사합니다. 제 앞에 보이는 길이 아무리 '대로(大路)'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가지 않으렵니다. 하나님은 대충 대충 저를 인도하지 않는 분이신 것을 확신하며, 그래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은 마다하지 않고 가렵니다. 저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빛난 모습을 바라보며 나아가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형편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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