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라

신대현 목사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모압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2, 3절) 그 반응을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3절) 수의 많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세상이라고 할 때, 세상은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궁극적으로 어떤 방법을 취하는가? (6절) 과연 나도 그러한 방법에 편승하며 살아가고 있나?
18절의 발람의 대답과 19절의 대답 사이에는 어떤 모순이 있다고 보는가? 20절에서 하나님이 발람의 가는 것을 허락한 것은 진정 뜻하셔서 내리신 허락이겠는가? (참조, 롬 1:24, 26, 28) 발람의 생각을 지배한 것은 무엇이었나? (참조, 벧후 2:15) 이로보건대 우리가 경계를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숫자를 두려워하는 세상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의 강한 손과 방패가 되셔서 대적을 물리쳐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안에서의 자축(自祝)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으로 전해지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의 증거가 된다.

모압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행한 것을 보았고 그로 인해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그들의 두려움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의 많음'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번민했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세상적이고 죄의 본질적인 두려움이다. '숫자'의 많음이 '세력의 강약'을 대변하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죄악된 사람들 가운데 자리잡은 불변의 풍조이다. 그것을 깨뜨리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오늘날에 '숫자'는 다양한 것을 대변한다. 부의 많음, 높은 위치, 동원할 수 있는 힘의 세력, 뛰어난 학식, 최신의 시설, 첨단 매체 등등.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에 이러한 것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거나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위축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면 그것은 발락이 이스라엘을 보고 번민한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드디어 발락은 그들을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신'의 힘을 빌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을 발람에게 보내어 그들을 저주케 하는 계책을 세운 것이다. 발람은 그들의 방문을 받고 하나님께 고하지만 하나님의 답은 분명했다.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자이기에 발락의 무리와 함께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락은 포기하지 않고 더 높은 귀족들을 보내어 발람을 권세 있는 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발람은 은금을 가득 채워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호한 결심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런 말을 한 다음의 그의 말에 분명히 나타난다: "그런즉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변개가 없는 진리

발람은 발락의 유혹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변개함이 없다는 진리를 버린 것이다. 이미 한 번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을 혹 달리 내리실 지 알아보겠다는 암시를 내비친 것이다. 그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발람을 그들에게 보내신다. 그것은 발람이 죄의 길에서 돌이키려는 의지를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뜻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그의 마음에 각인 시켜 주셨다: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찌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이었다.

불신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때에는 누구라도 발람의 상황을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의 메시지가 분명하면서도 상황이 달라지기보다 하나님께서 다른 말씀을 주시기를 바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죄의 본질적인 태도이다. 어떻게 이 태도를 이길 것인가? 세상이 더 많은 권세와 부를 약속하면서 다가올 때 과연 이것을 이길 힘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도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약속의 말씀이며, 둘째도 그것이며 셋째도 그러하다. 우리가 말씀을 버리면 말씀은 우리를 우리의 소욕대로 내버려둔다. 결과로 당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책임일 따름이다. 

발람은 불의의 삯을 사랑한 자라고 베드로후서 2:15는 말한다. '불의의 삯', 그것은 세상이 두려움의 우상으로 삼고 있는 바로 그 '숫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인 우리에게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두려움의 대상이며, 그 외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해 가야할 대상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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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상은 숫자를 두려워하고 그것을 이기지 못할 때는 '신'의 힘을 빌려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려 합니다. 저도 그러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만이 저의 두려움의 대상이며, 주님의 말씀만이 제가 따를 유일한 기준인 것을 고백합니다. 불의의 삯이 어떤 모양으로 저를 유혹하더라도 발람의 뒤를 쫓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쫓는 삶이 되도록 힘을 주세요. 저를 복 있는 자로 여겨 주시는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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