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8
여호와의 평화의 언약

신대현 목사

중심 내용

거룩해야 할 이스라엘 진영에 바알 숭배가 들어오고 그 백성이 우상에게 부속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신 질투를 대신했던 비느하스에게 제사장 직분의 영원한 언약이 주어진다.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는 우상을 섬긴 자들을 죽였지만 진영 밖의 우상의 나라들도 쳐서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를 나타내야 했다.

 

메시지와 적용

하나님의 질투란 그의 거룩이 부정과 함께 할 수 없을 때 그 부정을 향해 필연적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거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투는 '감정'의 반응이 아니라 '거룩'의 이면(裏面)이다. 레위기 10장 1-2절에서 보듯이 아론의 두 제사장 아들들이 부정한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할 때 불이 여호와 앞에 나와 그들을 삼켜 그들이 죽게된 사건은 부정함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필연적으로 질투의 반응을 보이신 예이다. 

거룩한 이스라엘의 진영 안으로 우상 숭배와 음행을 들여온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여호와 앞에 목매어달라'고 명하신다. 회막 앞에 죽은 자들을 매달라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범죄가 하나님께 지은 죄임을 극명하게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회막에 모여 울고 있을 때 우상과 음행으로 뒤엉킨 한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의 여인이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온다. 마치 아론의 두 아들을 향해 여호와의 삼키는 불이 돌진했던 것처럼 거룩한 제사장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질투를 그들 위에 쏟아 부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이면에 질투가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진영 이면에는 부정을 거부하는 본질적인 질투가 있어야 함을 비느하스는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다. 두 사람의 배를 뚫은 것을 생각할 때 '잔인하다'라고 느끼는 것은 '질투'를 '감정'으로 생각한 탓이다. 거룩함 안에 부정이 들어왔을 때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거부를 나타낸 것으로 본다면 비느하스의 행동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거룩한 자의 존재 양식'의 문제인 것이다. 그 존재 양식 안에 '속죄'가 있다. 곧 거룩함이 부정을 거부할 때 비로소 죄가 있을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신다. 그것은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의 언약이다. '평화'와 '제사장의 직분'이 병행구로 쓰인 것은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이루는 일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거룩하심과 질투 곧 여호와의 존재 양식의 양면'을 소유해야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본다. 그 분의 삶은 이 언약의 완성이었다. 그분은 여호와의 질투로 우리의 부정을 씻으시고 여호와의 거룩하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신 분이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직분을 소유한다.

먼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내 삶 가운데서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으로 들어오려는 부정함에 대해서 하나님의 질투를 대변하여 거부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거룩과 질투를 내 삶의 존재 양식으로 삼고 사는 삶이다. 

또 넓게는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며 사는 것이다. 광야에 이스라엘의 '진영'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교회가 울타리를 쳐 놓고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우리가 서 있는 삶의 그 현장에서 우리를 통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비느하스와 같이 가시적인 육체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가 행할 제사장의 직분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삶의 양식이 무엇이며 그 삶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의 삶에서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갈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확장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곧 미디안을 치는 것과 같은 세상을 향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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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 비느하스의 행동에는 '거룩'과 '질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본질적인 존재 양식입니다. 하나님을 대변하는 삶의 양식이었습니다. 제 안에도 비느하스에게 세워주신 제사장의 직분이 있음을 확인합니다. 제게 그 직분이 있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직분을 완성하셨고, 지금도 제 안에서 그 직분을 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다양하게 펼쳐질 삶에서 주님의 성품을 지키며, 또 드러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제는 가시적인 육체의 반응보다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 곳에나 펼쳐져 있는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세우는 싸움에 전력을 다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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