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3-24
범죄케 한 뿌리를 제거하라

신대현 목사

중심 내용

이스라엘로 음행을 저지르게 했던 미디안의 여자들을 살려둔 것에 대해 모세는 분노한다. 결국 처녀들만을 남기고 미디안사람들을 다 죽였다. 전쟁에 나갔던 자들은 스스로를 정결케 하고 물건들을 정결케 한 후에 진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메시지와 적용

미디안의 아이들과 여자들을 살려둔 것에 대해서 모세는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만을 남기고 남자아이들과 여자들을 모두 죽이라는 그의 명령은 잔인하지 않은가? 어떻게 온유한 자라고 알려진 모세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나?

그러나 나의 이런 질문에도 모순이 있는 것은, '왜 남자들을 다 죽인 것은 잔인하지 않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남자들'은 다 죽여도 별반 이의가 없다가 여자들과 아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 질문을 던지는 내 안에 이미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 '한 관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휴머니즘'의 관점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휴머니즘'은 가치 기준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내 안도 있으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 중심의 판단 기준,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 그러나 남자들을 다 죽인 것에 대해서 심각한 생각을 하지 않고 읽어 내려간 것은 휴머니즘적인가? 여자들과 아이들을 죽인다고 하니까 그제야 동정심이 일어나는 것은 왜인가? 휴머니즘의 불완전함과 이중 기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휴머니즘'이 모든 성경의 가르침과 대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휴머니즘이 성경의 모든 가르침의 기준은 아니다.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성경 안에서 발견한다해도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휴머니즘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속한 것이지, 사람들 자체가 선하고 존귀해서가 아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과 같이 휴머니즘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을 대할 때에 내가 가져야 할 자세는, 성경은 우리 시대와 다르다느니 혹 하나님은 잔인하다느니 따위의 '오늘날의 문화로 형성된 내 판단 기준'으로 섣부를 비판을 하기보다 나의 모든 판단 기준을 내려놓고 과연 '하나님이 가지신 관점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할 때 보이는 것은 '인간의 죄'이다. 휴머니즘은 인간을 '선(善)'으로 포장하기에 여자들과 아이들을 죽인다는 것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로 범죄케 한 '죄의 뿌리' 곧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최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만든 '사내를 안 미디안의 여인들'을 보시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앞으로 '필연적으로' 죄의 싹으로 자라나서 하나님 백성들의 원수가 될 아이들을 보시고 그들을 죽이신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는 감추고 오직 '인간 자체를 존귀하게 높여 평가하는 오늘날의 가치문화의 눈'에 하나님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보일 리 없다. 그러나 '정함과 부정함'을 철저히 다루시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의 판단 기준은 결코 '휴머니즘'이 될 수 없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당신의 백성들의 손으로 당신의 원수 된 사람들을 죽이게 하시면서 원수를 갚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 달라진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양태가 변한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는 팔레스타인 땅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확장되었고, 하나님의 전쟁은 보이지 않는 모든 정사들과 권세들과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오히려 더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하나님의 백성들로 범죄케 만드는 것들을 '죽여야 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는다. 칼과 창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기도하며,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의 손에 말씀의 무기를 쥐어 드려서 그분으로 하여금 '내 삶'을 말씀으로 이끌어가게 해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죄가 만연한 세상을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정복하며, 세상 안에 하나님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

내가 움직이고 있는 삶의 영역들을 바라보자. 무엇이 하나님의 대적들로 보이는가? 하나님의 원수 된 것들을 용납했던 내 모습에 대해 모세와 같은 분을 품자. 그리고 그것들을 대적하자.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이름이 있지 않은가!

죽이는 일이 마쳐진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을 정결케 했으며, 모든 물건들을 정결해 했고, 그런 후 진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 안에는 죽음의 흔적이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모든 영적 싸움을 하고 난 후, 돌아갈 진영은 성령 하나님께서 운행하고 계신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이다. 그래서 세상의 삶을 살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군사로 싸움을 벌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싸움이기에, 항상 나의 싸움 속에서 내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켜가고 있는지 살피면서 교회를 돌보며 하나님의 성령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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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 휴머니즘의 세상 사조에 젖어서 주님의 원수 된 것들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내기는커녕 죄다 용납하면서, 그래도 제 자신을 주님의 의를 품은 자라고 여기고 살아온 저의 모습을 이 시간 주님 앞에 드리고 회개합니다. 세상에서 교육 받아온 저의 알량한 관점을 주님의 관점으로 바꾸길 원합니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저도 미워하며, 주님의 원수 된 것을 저의 원수로 여기고, 죄의 뿌리만이 아니라 죄의 가능성까지도 대적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성령의 전인 저의 삶의 모습을 항상 거룩하게 지켜갈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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