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로는 누구도 다른 이보다 낫지 않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하뇨'(9절). '우리'는 누구를 가리키나. 1-8절의 정황을 볼 때 '우리'는 유대인이다. 바울은 1-8절에서 유대인의 나음에 대해 말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었다. 비록 유대인들 가운데는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지만(3절) 그렇다해서 그들에게 말씀을 맡긴 하나님이 불의할 수는 없었다. 그런 믿지 않는 자들을 제외하고, 다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기 때문에 여전히 이방인들보다 '나은 자들'인가. 이것이 9절에서 바울이 제기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아니'라는 답을 강조하려는 수사학적인 질문일 뿐, 그 자신이 의문이 나서 제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미 그는 1:18-32에서 이방인의 죄와 2:1-3:8에서 유대인의 죄를 지적했고 모두가 죄 아래 있다고 선언했다(9절).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 '행위의 의(義)'를 내세워 흠이 없을 자는 하나도 없는 사실을 이미 말한 것이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 '나음'을 언급한다는 것은 우스운 얘기이다. 유대인들의 나음조차 그들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였지 않은가(2절). 사람을 기준으로 할 때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나음이 없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이 없음을 얘기하면서 유대인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한 덩어리로 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10절)고 결론지었다.

'하나도 없다'는 말에 한 번 의문을 제기해 보자.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는 꼽을만한 의인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바울이 그런 자들을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왜 '하나도 없다'고 말했을까. 그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던 것인가. 그가 그렇게 얘기한 데에는 '인간의 행위'가 '의'의 기준에 자리잡고 있던 잘못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이면 몰라도, 인간 스스로의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의'를 내세울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절대적인 인간의 행위로서는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11절; 시 143:1-3).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12절).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에는 속임과 독과 저주가 가득하여 내뱉는 말마다 쏟아져 나온다(13-14절; 시 5:9; 140:4; 10:7). 이웃을 향해서는 포학함이 있고(15-17절; 사 59:7-8) 하나님을 향해서는 두려움이 없다(18절). 

하나님의 율법이 있었던 유대인들에게서 그런 모습들이 있었으니 하물며 율법이 없는 세상에서야 그 심함이 얼마나 더하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지만, 결국 율법은 모든 사람의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19절).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판에(20절)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 인간에게 죄를 깨닫게 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사실을 말해 준 것이다. 

율법의 목적

결국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행위를 칭송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라는 게 죄로 인하여 얼마나 가변적이고 불안정하며 지속적이지 못한 지를 깨닫게 해 주려고 주어진 것이다. 행위를 통해 변함 없이 의(義)를 지켜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불변하는 의인의 모습으로 서있을 '육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이 율법의 주된 목적이었다(20절). 죄인이면서 죄가 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려고 주어진 것이 율법이었고, 그럼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찾게 하려는 것이 율법의 역할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깨닫는 바가 있고 하나님을 찾는 일이 있고 유익한 것이 있으며 선을 행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은 자는 모두 한가지로 자기 행위로 치우치게 되어있고, 그러한 행위에는 '의(義)'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행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 행위 안에서 죄를 죄로 볼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오히려 찬양하고 그 분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모습이어야 한다.

주님, 주님의 심판 앞에서 어떤 자가 자기 행위를 선하다고 드러낼 수 있습니까. 그 심판의 기준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일진대 누구도 행위로 완전한 거룩을 내세울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행여 무슨 일을 한 것을 가지고 자랑할 마음을 품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주님의 긍휼 아래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죄를 죄로 볼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해서 감사 드립니다. 더욱이 죄사함의 은혜까지 함께 베풀어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제 행위 안에 제 자신을 감추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 앞에서 정직한 고백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