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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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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6
예수님 제자의 비전과 미션

신대현 목사

새벽말씀 10:1-15 추수의 일군들

메시지를 열며...

예수님은 백 이십 명, 천 이백 명의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시고, '열 둘'을 부르셨다. 열 둘이 예수님의 한계였기 때문인가.열 둘은 분명히 어떤 상징이 있는 숫자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대표하는 숫자이다. 예수님께서 열 둘을 부르신 것은 그 열 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참 백성을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셨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단순히 '열 둘'이 아니라 '열 두 제자'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가운데 '제자들'을 통해서 찾아올 수 있는 것이었다.

제자와 군중

제자는 군중과 다르다. 군중을 형성하는 근본 동기는 '호기심'이다. 그러나 제자가 되는 동기는 '비전'이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있어서 그 비전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주어진다.자기 비전으로 예수님을 좇는 자는 좇는 중에라도 언제든지 예수님을 저버리게 되어있다. 가룟 유다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묘사하라고 하면 '비전이 있는 자들' 혹은 '미션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 주는 자들' 혹은 '미션을 나누어주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바로 비전을 갖게 하고 미션을 나눠주신 일이었다.

비전과 미션 없는 부르심이란 하나님께 없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떻게 임하는 가를 생각할 때, 그것은 예수님의 비전과 미션을 접함을 통해서 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불로초를 사서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마태복음 10:1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는 말에는 영생을 얻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있고 미션이 있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영생이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만큼 영원토록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 가는 비전과 미션으로의 초대인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는 이와 같은 '부르심'이 담겨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시고 부르실 때에는 그 부르심에 담긴 비전과 미션이 아예 밝히 드러난다:"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비전과 미션 없는 부르심이란 하나님께 없다.'나를 따라 오너라'는 말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이 담겨있다. 그것은 나를 제자 삼으시겠다는 비전과 미션이며, 그럼으로써 나로 예수님의 형상으로까지 자라 가게 만드시겠다는 비전과 미션이다. 그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은 곧 나의 비전이요 미션이 되는 것이다.

롬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 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더불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이 담겨 있다. 그것은 제자 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가시겠다는 비전과 미션인 것이다.

그리스도인 됨의 순서

여기서 그리스도인 됨의 순서를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의 초대를 받아들였는가--당신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인가.
당신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을 아는가--당신은 하나님의 제자인가.
당신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을 아는가--당신은 비전과 미션이 있는 제자인가

이 세 질문 가운데 어느 대답에 '예'이고 어느 대답에 '아니오'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 질문 모두에 '예'인 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신 목적이란 사실이다.

이 세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제자는 선생의 말의 가치를 알고, 그의 비밀을 배워가며, 그의 삶의 양식을 따라가는 자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나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1. 선생의 말의 가치를 안다는 것은 그의 부르심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저버리지 않고 좇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요 6:66-68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2.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비밀을 배워가고 알아 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배워왔던 가치관들을 버리고 예수님의 가치관을 가지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눅 8: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3.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좇는 삶을 직접 살지 않고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마지막 누가복음 14장 27절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삶으로 예수를 좇지 않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결국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순서적으로 되어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에 '아니오'란 답을 하는 것은 결국 처음 질문도 '아니오'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기에 우리는 '군중' 속에서 나와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로의 초대를 받은 이상 이 땅에 미련을 둘 것이 어디 있는가. 어물쩍대고 있을 만큼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제자는 예수님의 연장(Extension)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많은 군중들이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제자'를 향해 있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자기를 따르는 군중'을 만들려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따르는 '제자'를 만들러 오셨다. 왜냐하면 제자는 선생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눅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who is fully trained)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제자는 '예수님의 연장(Extension of Jesus)'이다. 예수님의 인격의 연장이요, 비전과 미션의 연장이다.왜 말씀을 배우고 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가. 그 유일한 목적은 예수님의 인격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비전과 미션을 행하기 위해서이다. 그 이상도 아니요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내 인생은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할 자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 인생'이란 없다. 내가 다스려왔던 인생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지 오래이다.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훌륭하고 돈 많은 사람의 인생을 보면 '내가 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내 인생을 버리고 그 사람이 인생이 되고픈 욕망이 일어난다. 하물며 사람을 보면서도 자기 인생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인간인데,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삶을 살게 해 주겠다는 초청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그런데도 '내 인생'은 어디 있느냐고 묻겠는가.

우리 안에 내가 드러나는 것만큼 흉물스러운 것이 없다.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내 인생을 하나님이 살아 주시는 것만큼 인간에게 더 큰 영광은 없는 것이다.

세 가지 차원으로 보여준 예수님의 연장(Extension)

제자 된 우리의 인생이 예수님의 인격과 비전과 미션의 연장이라고 할 때에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차원을 보여준다.

첫째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1절에서처럼 'Healing'의 권세이며, 7절에서처럼 '천국을 선포'하는 권세이다.이것은 '거저 받은 것이니 거저 주어야 하는 것'이다(8절).그렇다는 얘기는 우리는 '권세'를 소유하고 휘두르는 자들이 아니라 '권세'가 나타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모든 은사의 사용이 다 이와 같아야 한다.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의 권세가 우리를 통해 투명하게 보이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는 미션을 위한 권세이지, 지위를 누리고 제도 안에서 포지션을 굳히라고 주시는 권세가 아니다. 어두움이 쫓기는 것은 제자 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권세가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천국 소식의 선포도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세이다. 하나님을 전하는 일이 아무 입을 통해서나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언급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으로의 초대가 되어질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둘째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삶의 양식을 따르는 것이다.예수님의 삶의 양식을 따르는 제자들의 원리는 10절에 나와있다:"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제자들은 삶을 보장해 줄 것을 먼저 마련해 놓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다. 이 문제로 인해서 제자들이 되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어떠한가. 마 6:25-2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은 애들 동화 속의 얘기이고 우리의 삶은 경제 논리로 꾸려나가야 하는가.경제 원리로 한 번 따져보자. 먼저 둘 것을 먼저 두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어 있다. 우선 순위가 잘못되면 그에 따른 손해는 막대하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우선 순위를 말씀하시는가. 마 6:30-33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히려 우리가 자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나는 먹을 것 받기에 마땅한 일군인가'

셋째는 예수님이 전파하신 천국 복음의 전파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절대로 복음을 믿으라고 구걸하고 다니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의 태도를 보면 '믿으려면 확실히 믿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다'이다.1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이 말을 빌미로 전도하지 않는 이유를 삼아서는 안 된다. 발의 먼지만 떠는 연습을 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를 시험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의 대표적인 예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한 것이며, 신약의 대표적인 예는 두로와 시돈 지방의 한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지 않으려 한 것이다(마 15:21-27). 예수님은 동일하게 제자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열린 마음을 확인해 보도록 하신다. 여기에는 전적인 구원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이 암시되어 있다.

지혜와 순결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호락호락한 세상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제자들에겐 핍박이 따른다.그러한 세상을 대해서 주님이 주신 말씀은 16절이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오히려 세상을 대해서 이리처럼 사는 그리스도인은 없으리라.사실 이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방어력을 가질 능력이 없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결코 자기 제자들이 '압력단체'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마냥 양처럼 세상에게 당하고만 살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셨다.그리스도인에게는 지혜와 순결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세상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주님의 전술이다.

눅 16:1-8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 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지혜란 사람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기준을 두고 모든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순결이라 함은 '섞이지 않은 것', '투명한 것'이란 뜻이다. 곧 비난 받을 수 없는 정직함이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비난을 당할 구석을 만들지 않는 것이 순결이다.

결론

이러한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세상을 바꿔 가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신다. 교회의 부흥은 이러한 제자들을 통해서 찾아오게 되어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비전과 미션에 헌신하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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