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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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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식물을 먹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5:11-14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수준에 ‘머무르면’ 아무 일도 없는 게 아니라 변절할 위험에 빠집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각을 [지속해서]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데에 이르러야 합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 - I <허물과 죄 가운데 행했던 우리> / II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에베소서 2:1-10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과거를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묘사합니다(1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은 행실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그 죽은 행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I) / (II)

하나님께 대한 신앙 - I <아들을 믿는 자> / II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요한복음 3:31-36; 히브리서 11:1-6 왜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습니까? 아들을 믿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을 ‘하나의 세상’으로 삼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I) / (II)

세례들 - I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 II <예수와 합하여 받은 세례> 마태복음 28:18-20; 로마서 6:1-11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헌신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는 ‘교인’이 되어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게 됩니다. ‘이것을 확인해 주는 예식’이 바로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입니다. (I) / (II)

안수 디모데전서 5:17-25 안수는 하나님이 교회에 세우신 질서를 놓는 통로입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성도는 안수를 통해서 세워진 교회의 권위를 따라야 합니다. 제각기 옳은 소견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경솔하고 가볍게 취급하는 태도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 고린도전서 15:12-34 예수님의 부활은 사도들에게 “산 소망”(벧전 1:3)이었고, 삶의 열정을 가지게 된 동기였습니다(빌 3:12). 그들은 부활의 메시지로 인하여 당하는 핍박과 고난을 달게 받았습니다. 부활이 빠진 복음의 메시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생생한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던 그 당시 초대 교회들 중에 하나인 고린도 교회에서 복음의 근본을 흐리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 - I <인자의 심판> / II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라> 마태복음 25:31-46; 베드로전서 4:12-19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그리스도인이 심판에 대해서 무지하여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면,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보이시고, 심판의 주가 되신 인자(人子)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자(人子) 안에서만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자의 심판이 곧 영원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I) /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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