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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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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b-37
다 이루었다

신대현 목사

■ 십자가에 붙여진 죄 패가 히브리, 라틴, 헬라말로 기록된 사실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합니까?(19절) 죄 패의 내용으로 볼 때 과연 그것이 예수님의 죄를 말해줍니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입니까? (참조, 마 2,2)
■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예수님의 갈증에서 육신의 고통 외에 무엇을 엿볼 수 있습니까? (참조, 시 42:2) “다 이루었습니다”는 주님의 외침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습니까?(참조, 요 4:34)
■ 주님의 옆구리에 상처는 주님의 죽으심 후에 무엇을 증거합니까?(37절; 계 1:7) 주님의 죽음은 내게 어떤 의미입니까? 주님의 옆구리에 찔린 상처를 로마 군병이 확인하려 했듯이(33, 34절) 주님의 죽음이 내게 확인되어야 할 사건으로 남아있습니까?

십자가 주위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죄 패’를 붙였습니다. 거기에는 히브리, 라틴, 헬라 말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19절). 빌라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하여 이런 죄 패를 달게 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입을 통해 고백하게 만들려 하신 그 칭호였습니다. 죄 패를 통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왕 되심을 천하로 인정하게 하신 것입니다. 살펴보면 그 고백은 정작 이방인들을 통해 시작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동방 박사가 왔을 때 그들이 고백하고 찾아온 예수님의 명칭이 ‘유대인의 왕’이었고(마 2:2) 마지막 빌라도가 자기 뜻과 상관없이 고집한 것이 이 호칭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수긍할 수 없는 사실이었어도 이방인들을 통해 확증되었고, 십자가상에서 온 땅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공포’되어 번복할 수 없는 예수님의 호칭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끝까지 이 호칭을 못마땅하게 여겨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으나 빌라도는 자기의 쓸 것을 썼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한 인간의 몸으로 자라나서 아무에게 흠모 받을 배경을 가지지 못했지만 결국 ‘다윗의 왕위를 이은 그리스도’로서 하나님 백성의 기름 부은 왕이 되어 온 땅에 선포되셨습니다.

십자가를 둘러싼 일만 아니라 ‘십자가 아래에서’도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취하여 제비뽑아 나눠가졌습니다. 속옷은 호지 않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그들이 찢지 않고 한 사람이 제비를 뽑아 가졌습니다. 이런 옷 스타일은 대제사장이 입는 것과 동일했습니다(출 28:32). 옷 하나도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에 쓰였습니다. 군병들은 사소한 것조차 빼앗는 장난을 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벗겨낸 겉옷에는 대제사장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십자가 곁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서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친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 소개했고,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모친을 어머니로 소개했습니다(26, 27절). 그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가족 관계’가 탄생했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요한복음 19:30

십자가 위에서

이제 예수님은 마지막 호흡을 내쉬고 계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에는 육신의 고통에 대한 호소만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 42:2)라고 말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에는 아버지께로 가고픈 갈망이 사무쳐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와 필연적으로 끊어져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그 소망은 더없이 컸습니다.

일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요 10:17). 목숨을 버리는 그 모습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 이유였습니다. 삼위일체 안에 사랑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서로의 희생을 확인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 마음 중심에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확증하셨고,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거기서 입증되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과 함께 주님의 머리가 숙여졌고, 그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한 순간도 딴 곳을 보지 않으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요 4:34). 돌아가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는 그 외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양식’으로 삼고 사신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외침이었습니다. 이 외침에서 인간의 참 생명이 열렸고, 하나님께로 향한 길이 곧게 뚫렸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사망을 향한 하나님의 승리였고, 우리를 생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였습니다.

십자가 이후…

하늘의 일이 이루어지고 있던 그 시간에 땅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고, 피와 물이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죽음을 끝으로 생각했겠지만 삼일 후 그 찌른 자 예수를 볼 것이었습니다(37절). 주님이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나시어 모든 사람에게 그 찔린 자국을 보이며 부활을 증거하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재림 때에도 주님의 모습에 그 찔린 자국이 선명하게 보여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이심이 온 천하에 증거될 것입니다(계 1:7).

우리 눈에도 그 옆구리의 찔린 상처는 보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그 상처를 보이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을 일으키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에게 보이시고자 그리하셨습니다. 땅의 시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 옆구리에 상처가 우리를 영원한 은혜 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재림 때 그 상처는 주님의 죽음을 조롱하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외침이 완전한 심판 때 다시 들려질 것입니다. ‘인류여 깰지어다. 하나님을 향해 깰지어다. 십자가에서 외치신 주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망을 벗어나 생명으로 들어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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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십자가는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 사망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의 장소입니다. 세상은 주님께 죄 패를 붙였지만 주님은 목숨을 버리시면서 세상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그 함성이 제 귀에 울립니다. 주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주 안에서 가능하며, 모든 생명이 주 안에 충만합니다. 다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인생이 되어 감사드립니다. 제가 무엇을 이루려는 어리석음을 갖지 않게 해주시고, 오직 주님의 이루심을 의지하고 사는 믿음을 갖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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