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


4:1-10
세상과 벗된 자

신대현 목사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 때문이라고 했다(1:14). 그 죄는 사망을 낳는다(1:15). 그 사망의 적용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2절; 참조, 요일 3:15) 왜 이런 모습이 불거져 나오는 것일까? (갈 5:24-26)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질투를 보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모하시는 것은 헛된 일로 취급당할 수 없다(5절).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당연한 권리요 모습이다. 그러면 우리의 마땅히 취할 자세는 무엇인가? (8-10절)

살인을 부르는 정욕

인간의 다툼의 뿌리에는 정욕이 있다. 각자 바라는 욕망들이 부딪칠 때 그곳에 싸움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싸움의 원인을 늘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시험을 받는' 것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고보는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14). 그리고 그 욕심은 죄를 낳고 그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말한다(1:15).

욕심이 잉태한 죄가 낳은 사망은 자기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남도 죽인다. 자기 중심이 동기가 되어 행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살인과 시기를 부른다(2절). 요한일서 3장 15절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명시한다. 예수님도 그리 말씀하지 않으셨던가(마 5:21-22). 그리하고도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모습인가. 남을 죽여 피가 묻은 손을 모으고서 과연 기도할 수 있겠는가. 정욕을 채울 밖에는 다른 동기가 아닌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모르시겠는가. 시험을 받는다고 떠벌릴 일이 아니며, 시험을 받는다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 할게 아니다. 다툼과 싸움의 기미라도 보일라치면 먼저 자기를 살펴야 할 것이다. 내 정욕이 상대의 심장을 찌르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왜 이런 모습이 불거져 나오는 것일까. 갈라디아서 5장 24-26절은 이렇게 답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십자가를 잃은 자는 성령의 길을 잃는다. 그 때부터는 헛된 영광이 십자가를 대신하며 정과 욕심이 인생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간음이고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다(4절). 아무리 좋게 말하려 해도 세상과 벗된 자가 동시에 하나님과 친분을 가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담 어찌할 것인가. 계속 정욕을 태울 것인가. 하나님과 다시 원수가 될 것인가.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 야고보서 4:4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 성령은 '우리의 삶'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신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질투를 보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모하시는 것은 헛된 일로 취급당할 수 없다(5절). 그것은 하나님의 당연한 권리요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요구하실 권리가 있다. 우리가 취할 유일한 모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6절). 교만을 꺾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해주신다(8절). 마귀는 별 것 아닌 존재이다. 마귀는 우리의 다스림을 받을 존재이다(창 4:7). 마귀의 꼬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 앞에서 항상 내려가 있다. 그런 자 앞에서 마귀는 슬슬 피할 뿐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손을 깨끗이 해야 한다(8절). 행위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변화 없이 세상과 벗되었던 생활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두 마음을 품었던 마음을 성결케 해야 한다. 두 기준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각의 기준이 되고, 결정의 기준이 되고,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과 짝하면서 웃어대는 즐거움을 택하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며 근심하는 것을 택하겠는가(9절). 전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전도서 7:5-6). 지혜자의 책망은 그 당장 마음에 근심을 주어도 사람으로 하나님을 생각게 하지만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요란하게 타는 가시나무같이 떠들썩하지만 헛된 종말을 맞을 뿐임을 가르쳐 준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애통을 그냥 놔두지 않으신다. 애통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따르며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이' 높이는 영광을 얻는다. 누구도 하나님이 높인 자를 낮출 자는 없다. 정욕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는 출발인 것을 알고 자기의 기뻐하는 것을 사랑할 것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할 것으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


주님, 세상과 벗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살아남을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정욕이 그러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은 주께로 돌이키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을 생각하게 하시고 굳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며 항상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OTNTFILE 신구약성경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