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랑만이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다. 9절과 10절은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사랑의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는 원망 없이 서로를 대접하는 것이다.

서로 대접해 주고도 원망이 왜 생기는가. '내가 이만큼 했는데 아무 고맙다는 말도 없다니' 내지는 '이런 정도 했으면 이제 오는 것도 있어야지' 또는 '이 만큼이면 됐지 뭘 더 어쩌라는 얘긴가'라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내 것으로 남에게 준다'는 생각이 꽉 차있기 때문이다. 과연 대접은 '내 것'으로 '남에게' '무엇을 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10절이 설명하는 바이다.

우리는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자기 것이랄 게 없고 모두 것을 주인에게서 받아 사는 자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는 말은 은사를 알지도 못하면서 분수에 넘치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서로를 섬기다가는 원망이 생긴다는 뜻이며, 우리가 나눠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내 것이랄 게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남에게 해 줄 수는 있는 한계는 '내게 주어진 은사'에서 그 선이 그어진다. 사람은 다 똑같을 수 없고, 다 똑같은 일을 할 수 없다. 모든 실천이 획일적으로 되어져야 한다면 그것만큼 과중한 부담도 없고 피곤한 일도 없다. 교회에서 모두가 다 말씀 선포자가 되어야 하고 모두가 다 전임 사역을 목표로 삶을 정리해 가야 한다면 세상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에게 '세상에서의 삶'을 요구하시고, 또 다양하게 요구하신다. 이를 위해 은사도 다양하게 주신다. 그 얘기는 남이 못할 것이 내게 있을 수 있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남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혼자 모든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 서로 봉사할 때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 보따리'를 풀어내면서 즐거움 가운데 하는 것이다. 내 분량만큼 하는 것이다. 분량을 넘어 즐거움이 없는 것은 고된 희생이며 원망은 이로부터 불거져 나온다.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청지기'라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나가는 통로이다'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면 거기에는 원망보다 넘치는 보람이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은혜가 흘러 나가려면 '내게 먼저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먼저 나에게 유익을 주시고 그런 후에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이중의 축복을 생각해 보라. 사랑하라는 명령이 내게 고된 요구가 되지 않도록 이모저모로 신경을 써 주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살핌을 보라. 그러고도 사랑을 내어놓지 않거나 남에게 줘 놓고 원망만 하고 있다면 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은사를 받은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안에서 나눠줄 것이 고갈되지 않을 수 있는 비밀을 하나님은 11절에서 알려주셨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왜 있는 것일까. 이 말이 없어도 이 구절의 의미는 전혀 문제될 것 같지 않은데 굳이 이 말이 들어있는 데에는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힘은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를 통해 공급되는 것이다.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삶'이 계속될 때에 나의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고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과 같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이다. 나는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그 삶에서 우리의 사랑은 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 형제에게 전달되고, 우리의 대접 우리의 섬김은 내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2. 마태복음 25:31-40을 읽으라. 예수님이 말씀하는 삶의 필요 영역들을 우리 시대의 상황에서 생각해볼 때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나?

본문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자애'를 강조하는 근거 본문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는 특별히 기독교적이랄 것이나 여타 종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본문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인가. 더군다나 본문은 마지막 심판 때에 사람들을 영생과 영벌로 가르는 기준을 언급한 것인데 다른 종교에서의 자애와 기독교의 자애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다른 종교에서 행한 자애도 심판 때에 '의'로 여겨질 근거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라면 어떤 차이 때문에 아닌가.

근본의 차이는 40절에 나온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바로 이 말에 기독교의 진리가 담겨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필요에 반응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랬다면 복음 전도보다 구제사역이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모든 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애의 대상을 '내 형제 중'으로 못박고 있다. 이것은 이 본문만의 얘기가 아니다. 10장 42절은 이렇게 말한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because he is my disciple)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냥 아무한테나 냉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제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냉수를 주는 것이다. 또 18장 6절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예수님이 언급하는 '소자' 곧 '지극히 작은 자'는 모두 예수님과 연관을 가진 자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 자애의 대상을 한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기준이 '자애'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형제 된 자들의 인격 안에서 만난 하나님 나라의 필요에 대해 반응하는 삶을 살았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자들이다. 그것은 거창한 일로 인해 되어지지 않고 한 형제 한 형제가 세워져 감을 통해 완성된다. 곧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 된 자들 안에 있는 필요를 서로 보게 하시고 서로 그 필요를 채워가게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진행시켜 나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의 필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지 '그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며 '하나님 나라의 문제'이다. 형제 안에서 보인 그 하나님의 나라의 필요에 내가 얼마나 반응하고 살았느냐가 마지막 심판의 기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자기가 의도하고 계획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양으로 분류된 자들은 자기들이 그런 일을 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37-39절).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삶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전혀 특별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프로그램으로 짜여있고 특별한 계기를 맞아 베푸는 구제에 몸이 베어있는가. 자기가 무엇을 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것은 이미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된다(44-45절). 그리고 그러한 습성은 염소로 분류된 자의 것이다.

형제의 필요는 성령이 주시는 마음으로 볼 때라야 지극히 자연스럽게 손길이 뻗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고는 괜한 생색이요 전혀 의미 없는 캠페인이며 조금 도가 지나칠 것 같으면 마음에 큰 부담으로 남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형제들의 필요영역은 어디일까. 그 당시는 문자적으로 병들고 헐벗고 먹지 못하고 나그네 되어 살고 옥에 갇힌 자들이 있었건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물론 문자적으로 동일한 상황이 전개되는 지역도 있다. 한국의 여건에서 볼 때 우리의 형제들은 일에 시달리며 가정을 제대로 이끌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며 세속에 찌든 사회 속에서 참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며 경제적인 필요로 인해 어려워하며 세속의 음란한 문화에 유혹을 받으면서 현대에서만 겪을 수 있는 삶의 이슈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 중에 과연 우리는 서로의 필요들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는가.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는 어떻게 형제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가. 필요를 채워줄 목적으로 내 삶을 팽개치고 나서라는 것이 아니다. 가장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 형제의 필요를 볼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항상 열려있어서 그것이 삶의 패턴으로 자리잡게 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진리를 행하는 삶이 자연스럽게 삶에서 표출되어 나오는 자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케 하신다. 그 나라는 바로 예수님의 나라이다. 상속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왕권을 나눠 갖게 하신다는 뜻이다(19:28). 참된 통치를 할 자는 일상 생활에서 서민의 삶을 가장 잘 익힌 자가 아니겠는가.

3. 외로운 사람은 가정에 있을 수도 있고 일 터에 있을 수도 있으며 교회에 있을 수도 있다. 아니 어느 곳에나 외로운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외로운 사람의 곁에서 함께 싸워주고 같이 기도해 줄 수 있는 길을 보여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자.

형제 된 자들의 필요만 아니라 우리에겐 세상 사람들의 영혼의 필요를 복음으로 채워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아직은 세상에 있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의 필요를 복음으로 채울 계획을 나를 통해 가지고 계신다고 할 때 결국 내가 삶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은 예사로운 사람들은 아니다. 그 중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이 지금은 예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로 나와 삶의 공간을 함께 나누게 하시고 나를 통해 그 사람들의 영적 필요들을 채워주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들의 필요를 보게 하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고픈 마음을 내 안에 들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시키시는 일이다.

구제를 위한 구제를 찾아 나서는 것은 대상도 지극히 모호하고 그나마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가 매우 희박하지만 삶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찾아 나서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미래의 형제들'로 간주하고 그들의 도움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가장 가깝게는 가족 식구들이고 좀더 범위를 넓히면 일터나 학교이며 더 나아가서는 정규적으로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받은 은사' 안에서이지 정도와 한계가 그어지지 않은 무한의 도움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