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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2:1-12 그의 별

[성탄절] 2:13-23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

[참 부요함] 5:3; 누가복음 6:20 가난한 자 왜 우리는 때로 영적인 빈곤보다 물질적인 빈곤을 더 두려워하는가? 물질적인 가난함은 눈에 보이는 고통이기 때문인가? 더 직접적인 현실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은 간접적인 현실인가?

[참 부요함] 6:19-34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제자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자들이다. 본문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을 天父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으로 다시 설명한다 (vs 20, 33). 이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사는 생활 자세를 말한다. 특별히 재물이 언급된 것은 대부분의 인간의 근본적인 생활의 동기가 재물에 있기 때문이다.

6:19-34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만물을 누리는 삶’은 과연 어떤 삶인가?

7:13-14; 누가복음 13:22-30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예수님을 바라보면 다른 길이 보인다. 이제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만 보고 살아 왔는데 그 길이 아닌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제자도] 10:1-16 예수님의 제자의 비전과 미션

10:28-39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 기독교의 진리를 얘기한다면서 ‘자기 목숨’은 이미 보장된 것으로 생각하고 이슈에서 빼놓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목숨이 경각에 달리기까지 ‘생명’은 이슈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저 사회 정의나 윤리의 항목들이 제시되어야 열띤 토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과연 목숨의 문제가 부차적으로 밀려날 수 있는 것인가. 목숨도 사회 이슈 가운데 하나일 수 있으며, 귀찮을 수 있는 것이며,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 11:25-30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12:1-14 성전보다 큰 이 예수님의 오심은 구약 시대를 살아 왔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율법과 성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던져 주었으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문제를 던지고 있다: - '성전과 율법은 이제 끝났는가?' 예수님은 율법과 성전을 폐지하시러 오신 분인가?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를 넘어서...] 25:31-46 인자의 심판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그리스도인이 심판에 대해서 무지하여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면,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보이시고, 심판의 주가 되신 인자(人子)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자(人子) 안에서만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자의 심판이 곧 영원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외로움] 25:31-46 형제 사랑은 어디에? 다른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고난주간] 26:1-16 예수님께 향유 부은 여인

[고난주간] 26:17-30 주여 내니이까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를 넘어서...] 28:18-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Into) 세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헌신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는 ‘교인’이 되어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게 됩니다. ‘이것을 확인해 주는 예식’이 바로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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