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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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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 마 5:3; 눅 6:20 왜 우리는 때로 영적인 빈곤보다 물질적인 빈곤을 더 두려워하는가? 물질적인 가난함은 눈에 보이는 고통이기 때문인가? 더 직접적인 현실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은 간접적인 현실인가?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14-22 라오디게아는 안과(眼科)학과 직물 산업이 유명했다. 이러한 '재정적인 성공'과 '의료의 발달'과 '환경의 부유함'은 참된 영적인 상태를 가리웠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주님이 이 교회를 향하여 '네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지적하신 것은 바로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것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영적인 실체를 가르쳐 준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눅 15:11-32 아들 됨의 진실한 의미를 모르는 아들은 아버지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두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를 아예 알려 하지 않았던 자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렇지 못한 자를 나타낸다. 그들은 둘 다 아버지 집밖에서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아들됨의 정의를 찾으려 한 자들이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마 6:19-34 제자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자들이다. 본문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을 天父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으로 다시 설명한다 (vs 20, 33). 이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사는 생활 자세를 말한다. 특별히 재물이 언급된 것은 대부분의 인간의 근본적인 생활의 동기가 재물에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 사 65:17-25 성도의 소망은 메시아 왕국에서 그 완성을 본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이루고 누리려는 세상의 어리석음과는 달리 하나님의 새 창조를 바라보는 기대로 주어진 인생을 인내한다. 그 인내는 고난이 아니라 현실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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